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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희주>(2016) - 원망스런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절규, 그리고 그 새로운 절규하는 얼굴

감독
강한성 (hansung Kang)
시놉시스
교회 일에는 지극정성, 집에서는 술을 마심 방탕한 생활을 하는 아버지 민철은 딸 희주의 꿈을 무시하고 모욕하며 폭력을 일삼는다. 민철의 방탕한 삶과 폭력에 견디지 못한 희주는 충동적으로 민철을 살해하기 위해 깨진 소주병을 든다.
영화감상
http://bit.ly/2krva73

 오랜 가톨릭 집안에서 살아온 입장이라 종교에 대해 다소 관대한 편이다. 물론 사회학과 철학,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니체가 주장한 것처럼)약자들을 위한 이데올로기이자, (중세 시대처럼)비이성적인 것에 대한 맹신으로 대중을 잡기 위한 권력이자, (심리학에서 주장하는)미지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자 도피로서의 종교의 일면을 공부하며 냉소적이게 된 편이다. 그래도 나는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교든, 모든 종교가 각자 가지고 있는 도덕적 사상(특히 "네 이웃을 사랑하라.")이 현실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정말 종교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러나 물론 이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만큼 현실적으로 기대하기가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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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주>는 이러한 종교의 현실적 한계, 특히 이중적 모순에 대한 지적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희주의 아버지 민철은 공공에서는 동네 목사에게 꾸준히 예물을 주며 관대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이지만 집에서는 발레의 꿈을 꾸는 딸에겐 관심없이 한심하다고만 폭언을 퍼붓고 술에 빠져 사는 인물이다. 희주는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못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참을 수 없다. 특히 자신은 발레리나의 꿈을 꾸며 돈을 못내면서도 학교까지 빼며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발레 콩쿠르에 참여하려 고군분투하지만, 아버지 민철은 공부나 하라며 "미친년"라는 발언을 서슴치 않으며 희주를 압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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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부터 밤마다 민철의 방에서 거친 여자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민철이 음란물을 보는 거라 생각하는 희주는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한다. 설마하는 마음에 민철이 집을 나간 후 방을 살펴보는데, 의문의 젖은 휴지 뭉치들도 발견되어 희주의 의심이 적중할 지경이 된다. 되는 일도 없고 아무 도움도 못 받고 콩쿠르 지원 신청 마감날은 다가오는 사면초가에서 희주는 아버지가 항상 목사에게 주던 예물 통장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 교회에 침입해 도둑질을 시도한다.

우야곡절 끝에 아버지 이름으로 인출된 돈봉투를 손에 넣은 희주는 몰래 콩쿠르 지원에 성공한다. 조용히 콩쿠르를 준비하던 찰나, 도난 소식을 들은 아버지 민철이 예감을 하고 희주의 방에 들이닥친다. 기어코 희주의 지원 신청서까지 본 민철은 더더욱 폭발하고 희주도 이에 질세라 아버지에 대한 극한의 원망을 폭발시킨다. 집을 나가 폭우를 맞으며 술을 마시며 슬픔을 달래던 끝에 집에 들어온 희주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지만 또 문제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폭발한 희주는 방금 마시던 깨진 술병 조각을 들고 민철의 방에 쳐들어가 찌르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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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아버지'라는 개념은 기독교에서는 물로 사회적으로도 가족을 지켜주는 유일한 파수꾼같은 존재를 의미해 왔다. 가족 중에 체력적으로 가장 힘이 있꼬 경제적 능력과 활동성이 크게 보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족과 신도들을 지켜줄 구세주로서, 또 그를 통해 사회를 이끌어주는 지도자이자 경제활동 주제, 이 둘로서 현대에까지 이어진 가부장제의 대표로 상징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자로서 위치, 그에 대한 맹신, 권위주의는 그간의 인류와 종교의 역사에서 보인 것처럼 계급 계층과 독재 의식, 불신과 차별을 낳으며 전쟁과 학살, 분노의 증오심의 역사를 초래했다. 희주와 아버지 민철의 관계도 딱 그런 인류의 역사(실존하지 않으면서 표상적 권위만 있는 신, 그의 논리에 희생되는 약자층-특히 조신하고 복종하라 강요받는 여성들)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더이상 어떻게 아버지를 믿을 수 있을까?

영화를 보던 나와 같이 신뢰가 한계를 치솟은 순간 희주는 민철을 죽이려 방으로 들이 닥친다. 그러나 민철의 방에서 들려 오던 신음 소리의 정체를 알아채는 순간, 이야기가 역전된다. 신음소리는 음란물이 아닌 희주의 탄생을 기록하는 비디오에서의 희주를 낳는 (세상을 먼저 떠난 듯한) 아내의 소리다. 그리고 민철의 앞에는 눈물, 콧물을 닦은 휴지 뭉치들이, 또 옆에는 희주에게 선물하려는 듯한 새 발레 슈즈가 놓여 있다. 순간, 희주는 흉기로 가져온 병 조각을 뒤로 조용히 감춘다. 믿을 수 없던 아버지가 딸을 생각하고 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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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신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평소에도 수도 없이 해왔다. 과연 신께서, 예수께서 재림하여 구원해주실지 아니면 수천년을 이어온 거대한 사기극인지 도저히 알 터가 없지만, 신적인 존재는 인간이든, 기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구세주를 항상 바래온 입장이다. 이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는 터에서 그나마 세상에 실존하는 구세주인 아버지, 혹은 하나님 아버지라는 명칭만이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구세주다. 그러나 술주정뱅이에 권위주의자고, 이름 밖엔 실존하지 않는 아버지를 어찌 더이상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렇게 더이상 믿지 않고 배신이라는 낙인을 각오하며 저항을 시도해보려는 순간 때로는 마침 그 때 황당하게도 그가 구원해주러 오곤 한다. 도움을 기대했지만 결국 도움을 받는 아이러니함이 세상의 이치이자, 지 부당한 권한으로 세상을 만들어 온 아버지의 이치인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 모든 아이러니 각자의 시선의 차이다. 하긴 성별간의, 세대간의, 그리고 지도자와 민간 간의 시선이 일치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그 점에서 안도도 되지만 동시에 답답함도 밀려왔다. 이런 아버지의 숨겨진 정성이 앞으로 또 올 것이며 그의 폭정은 언제 끝날 것인가? 그 점에서 기독교는 물론 그 정신의 기본인 가족의 기본성 마저도 흔들리는 상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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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기독교적 메세지를 비판하는 동시에 철학적으로 깊숙이 고찰해온 영화를 많이 보아왔지만, 이런 영화들의 등장은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다. 여기 기독교 맹신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가 나온게 정말 기쁘고 흥미롭다. 감독의 철학적, 신학적 고찰이 교조적이지 않는대신 우화처럼 밀려 들어 오게 하는 연출이 훌륭하다. 무엇보다 나는 희주를 연기한, 절규하는 새로운 얼굴의 배우 이윤지에게 더 눈에 들어왔다. 표정없이 창백한데다 도둑질하기 위해 검은 모자에 가려지거나 비에 젖어 완전히 엉망이 됨에도 불구하고, 소리없이도 절규하는 듯해 그 절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에너지의 얼굴이 새로운 명배우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내 예감이 부디 틀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단편영화 감상 http://bit.ly/2krva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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