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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인형(2014) - 대한민국 사회에 딱 맞는 그람시(Gramsci)식 바디-호러(Body-Horror)

감독
노도연 (Doyeon Noh)
시놉시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다 똑같이 생긴 세상 속에서 홀로 소외감을 느끼는 소녀, 자신의 절친한 친구마저 똑같은 얼굴로 변해버리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영화감상
http://bit.ly/2lQ02P3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시기 성형수술이라는 개념이 국내에 막 대중화 되었을 때의 분위기를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그 이슈는 등장하자마자 전국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온갖 날선 비판과 잔혹한 풍자가 오갔다. 그런 영향에서인지 어린시절의 나도 처음에 성형수술이나 성형한 여성들에 대해 큰 죄처럼 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얼굴이 못 생기고 예뻐지고 싶어지더라도, 외모 지상주의에 눈이 멀어 얼굴 피부와 뼈를 뜯어 고티면서 자연으로서의 자기의 신체를 웨손하고 재조립하는 방식이 과하다 느끼는 걸 넘어서 오히려 원시적이라 느껴질 만큼 비문명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청소년기와 대학생 시기를 거치며 외모에 대한 보편적 욕망과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그 소망을 이해하게 된 동시에 인공적으로 신체를 고쳤다 해서 폄하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점을 깨달으며 성형도 나름 필요한 것이라고 인지 하며 낙관적 이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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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형과 이의 유행은 현대 사회에서, 특히 우리나라에서 크나큰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고 나도 이 역시 인정하고 있다. 충분한 가치 있는 유행이라 느꼈던 성형이 과욕을 부리면서 수도권 지하철 어느 역, 어느 지하철에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마케팅을 하게 된 결과 현재 대한민국 비즈니스를 성형의 왕국이라 조롱할 수 있을 만큼으로 과잉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 광고들 하나하나 모두에 한 명 이상 내세우는, 각자 병원에서 수술 받은 모델들의 모습이었다. 개구리처럼 큰 눈, 송곳같은 턱, 피노키오처럼 튀어 나온 코 지나치게 길고 마른 볼, 역시 과하게 튀어나온 광대뼈까지. 현대에서 추구하는 미인형에 전형적으로 맞춘 모델들이 모두 똑같다는 점이었다. 마치 한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낸 공산품같은 느낌이었다. 각 나름의 개성도 없고 새로운 미학적 시도도 없고, 심지어 모두 똑같은 만큼 오히려 인간미도 없어 보였다. 또 어떻게 보면, 앞서 말한 현대의 인기 미인형에 한치에 오차없이 완벽하게 맞춘 모습이, 남자인 내가 보아도 아릅답다거나 호감이 간다거나 심지어 성적 매력이 느껴진다기보다는 프로이드의 주장한 낯익은 낯설음(Uncanny)’이나 이에 기초한 현대의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에 정확히 맞아 떨어 진다할 만큼 시각적 답답함이 느껴졌다. 어떻게 이 전략으로만 집중적으로 장사를 할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지만, 더 심각하게도 이런 미모에 대한 유행은 악화된다 할 정도로 모두가 좋아하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 단편 <인형>이 이러한 공포를 정확히 집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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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 벽지로 아름답게 꾸며진, 그러나 다소 어두운 조명의 방 한가운데서 어린 여자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곧 화면 위로 얼굴이 가려 보이지 않는 엄마가 다가가 다정하면서도 낮은 목소리로 그림을 보여 달라고 한다. 아이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조각같이 갸름하고 뾰족한 턱에 컬러풀하게 칠한 눈의 초상화 그림을 보여준다. 기괴하지만 컬러로 가득한 그림을 본 엄마는 가져다가 액자까지 달아 멋지게 벽에 건다.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부감 촬영, 어두운 조명의 붉은 배경의 미쟝센과 더불어 사랑하는 엄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다정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음산한 분위기로 단편 <인형>이 시작된다. 여고생 인형은 반 친구와 만나 어느 공간 안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서로 부모님께 미리 얘기했냐 얘기를 하던 끝에 인형은 곧 부름을 받고 들어간다. 인형은 그 동안 그려온, 똑같이 갸름한 뺨에 뾰족한 턱을 지닌 그림들 포트폴리오를 한 여인에게 보여준다. 성형외과 원장인 듯한 여인은 인형에게 이와 같이 만들어 달라고요?”라고 말하고, 인형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원장은 이는 인형의 경우에는 너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어 안 되겠다며 거절한다. 그러자 인형은 저는 정말 이렇게 되고 싶어요. 언니처럼요...”라 말한다. 그 순간, 원장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던 카메라는 화면 전환하여 드디어 원장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림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의 완전히 인형 혹은 조각 같이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아름답기보다는 오히려 혐오스러워 보이는 얼굴이다!

 

결국 성형수술을 거절당한 인형은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서는 엄마와 언니가 저녁 식사 중이다. 이웃집에서 개에게도 성형을 시켰더니 개에게 손을 물려 덧나 상처를 입었다는 황당한 내용의 수다가 오가던 참에 인형이 성형하고 싶다고 가족에게 선언한다. 그 때 맞춰 영화는 똑같이 혐오스러운 조각 얼굴의 엄마와 언니의 얼굴을 보여준다. 언니는 인형은 지금도 예쁜데 뭐하러 비싼 성형을 어렵게 하려 하냐 따지고 인형은 엄마도 언니도 다하면서 나도 하고 싶다 주장한다. 분위기가 험해지는 그 순간 일하다 들어온 아빠도 돌아온다. 태평해보이는 아빠도 역시 똑같은 조각 얼굴이다. 상심한 인형은 밖에서 휴식을 취하다 다시 친구와 재회한다. 그러나 그 친구도 똑같이 성형을 하였다. 친구까지 원하던 수술을 해내자 인형은 절망한다. 비오는 골목길에서 조각 얼굴들의 사람들 사이를 허탈하게 지나던 인형은 골목 벽에 성형체험 지원자 모집 구인 광고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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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조각 얼굴을 한 남자 의사는 인형에게 수술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계약서에 서명을 요구한다. 꿈에 그리던 성형을 위해 인형은 계약서에 서명하고, 수술대 위에서 마취에 잠이 든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 드디어 수술한 인형도 똑같은 조각 얼굴을 갖고 사랑하는 (조각 얼굴의)엄마와 함께 다정하게 거울을 맞보고 있다. 그 모습이 단란한 모녀의 모습으로 보여야 함에도 그러긴 커녕 공포물이나 광기어린 인물들처럼 보인다. 순간 급박한 심박 기계의 음파 소리와 함께 의사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온다. 화면 하얗게 밝아지다, 다시 전환되면, 피로 잔뜩 물든 붕대로 감싼 인형의 얼굴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후 다시 가족의 저녁 식사 자리. 조각 얼굴 가족이 오늘도 무덤덤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그 와중 후드티를 입고 얼굴이 안 보이는 뒷모습의 인형이 자리에 앉는다. 인형은 한 쪽 손으로 얼굴을 들어 강조해 보이는 듯 하더니, 식사를 하는 가족들이 동시에 멈추며 분위기가 다시 어두워진다. 인형이의 얼굴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들었던 궁금증은 왜 인형은 굳이 성형 수술을 하고 싶어 했는지 그 절실함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물론, 성형한 조각 얼굴이 현실 입장에서 혐오스럽건 아니건 상관없이 영화 속에서 최고의 미의 기준이라 보더라도, 당연히 예뻐지고 싶겠지만 아직 어린 학생 입장에서 힘든 수술까지 감당하며 다른 사람들과 똑같게 맞춰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물룬 주변 지나가는 사람들부터 친구, 심지어 엄마, 아빠, 언니 가족 모두가 얼굴을 다 갖추고 있기에 자기만 (역시 자연적이든 아니든 불문하고)다른 점에 아쉬움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성형하라 강요하지 않았고 그가 최고라 주변에서 주장이나 광고하는 것이 영화 속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왜 인형은 성형을 하고 싶었을까? 심지어 엄마와 언니도 인형의 얼굴이 괜찮다며 수술하지 말라고 충고까지 준다. 그럼에도 인형은 수술을 선택하며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강담해야 했다. 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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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져 나오는 의문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답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모두가 해야 한다고 또 그 얼굴이 당연히 예쁜 얼굴이라고 아무도 강요도 설득도 말도 안 했지만, 그들은 인형이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믿듯 은밀하게, 혹은 자신들도 모르게 분위기적으로 주장해 나갔던 것이다. 맑시즘과 페미니즘을 공부한 입장에서, 사회가 다수나 혹은 지배층이 기존의 계급 시스템 및 젠더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대놓고 주장하지 않지만,(혹은 당연히 그래서 안 된다고 표상적으로 말은 하지만) 그 정치대신 문화적 현상들을 통하여 시스템을 따를 수 있게 무의식적으로 대중들을 이끈다는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주장이 연상되었다. , 지배 시스템의 말 대신 문화적, 감각적 여파를 통해 국민들은, 대중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일상의 세부적인 부분에서까지 질서 체제 혹은 계급 개념에 종속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주로 TV와 영화 같은 대중매체와 예술을 통해 전파된다. 미를 따지는 성형도 마찬가지다. 

 

너무 과한 해석이 아닐까 나 자신도 고민되지만, 영화를 다시 보며 구석구석 살펴보면 (감독이 의도했든, 혹은 의도하지 않고 역시 무의식적으로 해냈든)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영상 곳곳에 나타난다. 규격적인 기하학적 미로 잡힌 실내 공간들부터, 골목 씬에 벽 여기저기 붙어 있는 얼굴들이 집중적으로 그려진 전단지들, 그리고 괜찮다고 수술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인형의 자연 얼굴에 격려도 하지 않는 (얼굴만큼) 기계적인 주변 사람들의 태도부터 그렇다. 심지어 오프닝도 얼굴에 집착하듯 얼굴만 그리는 어린 인형에서부터 시작한다. 애초에 인형은 어느 누구의 말도 없었음에도 (은유적 표현으로, ‘사회적인 선천성으로)이미 얼굴에 집착해 있었던 것이다. 계속해서 꿈에 그리던 얼굴을 그려와 포트폴리오까지 만들고, 다들 괜찮다하지만 남들과 다른 얼굴이라는 현실에 인형은 (어쩌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소수자로서의 소외감을 느끼고 다수에 포함되고 싶어졌을 거라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았어도, 모두가 같은 조각 얼굴을 하고 있고 얼굴과 미를 중시하는 주변 곳곳의 미쟝센 분위기마저도, 주변 사회 역시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인형을 자괴감을 몰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세상에서 인형의 본연 귀여운 얼굴이나 순수한 소녀같은 개성도 가치 있어 봤자 소용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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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안토니오 그람시의 사상으로 보지 않더라도, 영화 속 세상은 충분히 공포스럽다. 특히 계속 강조한 조각 얼굴의 경우 앞서 말한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 즉 모두가 추구하는 완전한 인간의 형태에 가까울수록 오히려 호감도보다는 불쾌감이 떠오른다는 주장에 충분히 어울리는 컨셉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그토록 추구하는 큰 눈, 긴 속눈썹, 뾰족한 턱, 갸름한 볼, 도드라진 광대뼈에 매끈한 도자기 피부를 갖추고 있더라고 그가 애초에 너무 인공적이기에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로봇이나 마네킨 같은 그들도 사람(가면을 쓴 배우)이고 태연하게 대화하고 음식을 먹는 광경도 이상하게 공포스럽다. 그 점에서 개인적으로 영화는 완벽한 바디-호러(Body-Horror)’(인간 육체의 훼손, 변형, 감염, 재결합 등을 다루는 내용의 호러 장르) 영화라 느낄 수 있었다. 완벽한 미적 비율과 불쾌함에 나돌면서 이가 일상적인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 세계관에서 결국 똑같이 수술을 감행하다 핏빛으로 파멸되기까지, 영화를 보는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자신의 몸 그리고 얼굴을 향한 가공포를 정곡으로 찌르고 있다. 그리고 그를 기괴한 분장의 배우들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확실한 바디 호러 장르가 아니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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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리뷰를 정치적 해석으로 몰고 가듯 쓴 것 같아 나 자신에 대해서도 불안하게 느껴지지만, 애초 영화가 지식인 입장로서 감독의 의도적, 비의도적으로 세상을 보는 자기 시각으로서의 정치관을 내보이는 매체라는 점에서, 분명 위에서의 그람시 사상, 바디 호러 코드에도 적어도 무의식적으로라도 염두해 두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외에도 마치 히치콕을 연상시키는 불안감을 유지하는 지속적인 부감샷, 인형을 제외하고 가능한 다른 인물들의 얼굴을 화면 밖에 내놓아 감추다가 절묘한 편집과 함께 마치 스매시 컷(Smach Cut)처럼 얼굴이 나타나는 공포영화적인 연출, 그리고 육체에 대한 불안을 나타내듯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빛의 미쟝센 등 감독의 긴장감 연출도 메시지를 신경쓰지 않고도 충분히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도록 잘 연출되어 있다. 지금 온라인 여러 곳에 공개된 이 작품이 성형 왕국, 외모지상주의 왕국, 미인 여성 중시 왕국인 대한민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집중 받으며 토론의 장을 열게 되었다 한다. 감독이 정확히 문제점을 파악하면서도 이를 무겁지 않고 흥미롭게 보여준 덕분이지만, 세상을 점차 변화시키고 있는 이 역시 그람시가 주장한 예술의 힘, 영화의 힘이 아닐까 싶다.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반향을 가져올지 역시 기대해본다.

 

단편영화 감상 http://bit.ly/2lQ02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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