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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이 시대 꽃은 필 수 있었는가. 영화 '꽃(Blossom)'을 보고

감독
박종옥 ( jong ok Park)
시놉시스
백설 공주에게 왕자님이 있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운명의 왕자가 있을 거라고 믿고 있던 설. 그러던 어느 날, 순경이 위험에 처했던 설을 구해주게 되는데, 설은 그가 한눈에 자신이 기다리던 왕자님이란 걸 알게 된다.
영화감상
http://bit.ly/2s72o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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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

 

 영화의 주인공인 '설'은 이런 운명을 믿는 현시대판 '공주님'이다. 그녀는 어느 날 순경을 만나 운명적 사랑을 느끼고 그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다 결국 그를 얻어내고 만다. 그러나 현실의 벽에 부딪힌 그녀는 그를 죽이고 만다.

 과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 동화 속 공주님 처럼 운명적 사랑을 믿는 이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얼마나 될까. 영화의 도입 부를 본 순간 이에 대한 의문이 나로 하여금 제시됨과 동시에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영화의 마지막 부분까지 쉴새 없이 달렸다. 필자는 참고로 운명적 사랑을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믿었다. 운명이란 하늘이 맺어준 인연으로서 언젠가 만나 서로 눈에 띄는 즉시 사랑에 빠져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행복한 말이다. 거두절미하고 사랑에 빠진다니​,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노력없이 사랑에 빠져 서로의 물질적 정신적 배경없이 사랑에 빠진다는 말이. 하지만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21세기 우리는 어쩌면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돈이 없어보이는 초췌한 이는 무시당하지만 그가 갑부라는 소문이 퍼진다면 모두가 그를 부러워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의 행색에 대한 타당한 이유까지 스스로 만들어 낸다. 심지어 그의 사랑을 거부한 여성이 다시 그에게 사랑을 갈구할 수 있다. 이렇듯 운명이란 것은 바람 앞에 꺼질 촛불과도 같이 너무나 힘없는 말이 되어버린 시대다. 

 

 

 운명에 사로잡힌 설.


 ​주인공 설은 등장과 함께 자신의 운명의 왕자를 기다리는 인물이다. 이런 그녀에게 손을 내민 것은 국가의 공직자인 '순경'이며, 그가 내민 손이 운명이 내민 손과 같다 여긴 그녀는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이런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운명이란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심어준다. 그리고 순경과 설이의 사랑이 깊어짐과 동시에 의문을 확신으로 바꾸어준다.

 그러나 운명의 현실적 실현은 쉽지 않았다. 어디에나 장애물이 있듯이 그녀의 운명적 사랑 앞에도 그의 여자친구라는 장애물이 존재했다. 그녀는 장애물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벌레를 잔인하게 죽인다. 여기서 죽임 당한 벌레는 단순히 벌레라는 1차원적 의미가 아닌 그의 여자친구에 대한 설이의 살인욕구를 표출하는 도구로 활용되며 벌레가 죽듯 그의 여자친구 역시 죽인다. 하지만 그녀는 벌레를 죽일 때 보였던 분노한 표정과는 반대로 살벌하게 웃으며 그녀를 죽인다. 이것은 그녀의 운명적 사랑에 대한 동화적 믿음으로, 마치 동화 '백설공주'에서 마녀가 공주를 죽이기 위해 사과를 건낸 것 처럼 웃는 얼굴로 꽃을 건내며 살해한다.

 그녀의 죽음을 알지못한 순경은 그녀의 행방불명을 이별의 징조로 여기고 이내 설과 사랑에 빠진다. 이에 설은 자신의 운명적 사랑이 완성되었음에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이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영화에서 계속 현실이 존재하였듯 이 사랑에도 현실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랑에 권태를 느낀 남성은 그녀를 귀찮아하기 시작하고 사랑은 빠른 속도로 식어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설이는 큰 혼란을 느낀다. 

 그와의 잠자리에서 사라진 설은 꽃꽂이를 하고 있었다. 사실 혼란을 느낄때마다 꽃꽂이를 해온 그녀의 손은 어느새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아무렇지 않다. 잠자리에서 그녀가 사라진 것을 눈치챈 순경은 일어나고 그녀가 문 밖에 있는 것을 확인한다. 잠에서 깬 그는 궁금증에 그녀의 방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자신의 전 여자친구 시체를 발견한다. 이에 그는 격노하고 그녀에게 욕을 퍼부으며 집을 나서려한다. 당황한 그녀는 자신의 운명적 사랑이 떠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가위를 들고 쫓아간다.

 식탁에는 그와 그녀는 함께 앉아서 카레라이스를 먹지만 그의 얼굴을 창백하고 온 몸의 피투성이다. 음식을 주지만 먹지못하고 영화는 설이의 미소와 함께 끝난다.



 붉은 꽃.


 ​영화에서 설은 동화 속 공주처럼 원피스를 주로 입는다. 이 원피스는 그녀의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도구로 쓰여지며 극의 흐름을 알려준다. 또한 순경과는 대조되는 앵글을 통해 현실의 압박으로 부터 억눌려지는 설이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 외에도 여러 장치와 도구를 이용해 영화는 괜찮은 연출을 해내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녀의 상대역인 '순경'에 대해 확실한 캐릭터 표현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있다면 그만큼 중요한 것이 안타고니스트인데 이에 대해 살짝 여유부린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극의 흐름에 대한 설득력 부분에 있어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매우 괜찮은 작품이었고 이를 장편영화로 제작하여 상영한다 해도 좋을 듯 싶다.

 마지막으로 운명에 관해 말하고 싶다. 사실 현재 우리 사회는 초반 언급했던 것과 같이 어쩌면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가 아닌가 싶다. 이런 상황에서 운명은 어쩌면 우리가 이뤄온 문명과는 상반되는 용어로 무의식 중에 박해받고 있어왔는지 모른다. 필자가 순수한 것인지는 몰라도 영화에서 보여줬던 광적 운명이 아니라 정말 그럴듯한 운명이 존재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사회가 되길 바란다.


단편영화 감상 http://bit.ly/2s72o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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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cinehub 01.04 20:01  
후기 너무 좋습니다.
비평 01.04 20:12  
[@cinehub] 너무나 부족한데 감사합니다..
cinehub 01.04 22:33  
[@비평] 휼륭 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