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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네(2015) - 기괴한 가족의 비밀

감독
Kino Ferrero & Borja Fdez-Fuchina
배우
Ricardo Gomez Barbara de Lema Kira Anzizu Diaryatou Daff
시놉시스
Unsual family has to recover for the lost of their father.
영화감상
http://bit.ly/2FyfwNG

기괴한 가족의 이야기

 

때론 시작하는 오프닝에서부터 자극적이다 싶을 정도로 충격적으로 시작되는 영화들이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집중이 흐트러지기 쉬운 관객들의 집중을 바로 유도하는 게 좋은 연출이라 항상 생각해 왔는데, 그 방법으로 처음부터 바로 강렬한 영상이나 혹은 자극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으로 쇼크를 주며 그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 방법을 선택한 작품들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자극이나 폭력을 마구잡이로 쓰는 것도 아니라, 주제의식을 첫 장면 및 오프닝 샷에서부터 바로 함축해 보여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 보았을 때, 충격적인 내용을 다룬 스릴러나 공포물에서 그 영화들이 다루는 문제적 주제의식을 시작에서부터 그 범상치 않은 충격과 함께 잘 보여주었을 경우 그들이 싸구려 장르가 아닌 제대로 만든 걸작이라는 인상을 받곤 한다. 나의 경우 그 대표적인 예로 <이스턴 프라미스>(데이빗 크로넨버그), <라이언 일병 구하기>(스티븐 스필버그), <시계태엽 오렌지>(스탠리 큐브릭) 등이 그랬다. 그 영화들도 마침 어둡거나 불편한(혹은 그만큼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다보니, 감독들도 그에 대한 강렬한 요소 혹은 집중이 시작부터 나타나는게 당연지사라 결정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공포, 불안이라는 소재는 언제 어디서나 예고 없이 닥치며 충격으로 시선을 유도하기 마련이니까.

 

 


 

 

<카르네>의 오프닝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한 아름다운 여인이 내려다보는 측면 얼굴 클로즈업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거의 땅바닥과 가까이 엎드려 고개를 내밀어 초점 없는 듯한 멍한 눈으로 흙바닥 위에 지저분하게 널린 나뭇잎 더미를 바라본다. 색상톤도 녹색빛으로 보정되고 조명도 밝아 그 느린 움직임의 쇼트 자체가 한 편의 아름다운 시처럼 보이던 것도 잠시 여인이 바로 땅으로 고개를 내리더니 나뭇잎 더미 안에 있던 커다란 대벌레를 한 입에 물어 씹어 먹기 시작한다! 마침 졸음에 몽롱하던 상태에서 영화를 보던 나도 그 장면에서는 졸음이 달아나 버렸다. 평온한 듯하다가 예고 없이 벌레를 입에 무는 반전도 물론이거니와 마치 김기덕 감독의 예전 영화들을 연상시키게 벌레를 천연덕스럽게 씹어 먹는 여인의 모습도 쇼킹했다. 그렇게 내가 그 장면의 의미가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무의미한 반응을 하고 있던 찰나, 카메라가 엎드린 여인의 풀샷으로 잡고 우측으로 트래킹하니, 여인의 뒤편에 쓰러진 큰 나뭇가지가 여인을 향해 뻗어 있는 황당한 샷이 나타난다. 마치 엎드린 여인의 엉덩이를 향하는 것처럼 혹은 거대한 성기가 여인을 겁탈할 듯 여인의 엉덩이를 향해 발기된 상태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화면이 암전되다 다시 페이드인 되며 전환되는 새로운 장면도 충격 면에서 압권이다. 누군가 벽난로 안에 들어가 머리 위 굴뚝 안으로 머리와 양팔을 들이밀어 넣고 있다. 굴뚝 안을 양손으로 긁어 뒤지며 무언가를 찾는 것 같은 그를 잡은 화면이 천천히 트랙 아웃하며 그의 풀샷으로 이어지면, 화면 쪽을 향해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아 있는 자세가 나와 치마가 들춰녀 다리 사이가 들어다 보이는 민망한 자세가 나타난다. 다리 사이로 거의 속옷 혹은 치부가 보일 것 같더 그 불안한 찰나에 굴뚝 안 여인이 짐승 같은 낮은 괴성을 질러댄다. 굴뚝 안으로 그 소리가 거칠게 울려 더 공포스럽게 들려온다. 곧 그가 집안의 안주인, 어머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짐승처럼 벌레를 먹는 소녀와 양 다리를 벌린 채 굴뚝 안에서 짐승 같은 괴성을 지르는 어머니. 시작부터 황당할 정도로 충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두 여인들의 모습은 마치 <더 워먼>(럭키 맥키)이나 <오디션>(미이케 다카시)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이어 보여 지는 고딕풍의 집안 미쟝센과 함께 영화도 역시 정상적인 이야기로 전개되지 않는다.

 

 


 

 

굴뚝 장면 이후, 젊은 청년인 아들이 어머니의 흰머리를 뽑으며 빗겨주고 있다. 핑크빛 톤의 고품스러운 방 안으로 햇빛이 들어오지만 역광으로 화면에 비춰 오히려 그림자가 져보이고 심히 어두워 보인다. 그 공간 안에서 아들 마우로가 굴뚝에서 무얼 찾고 있었는지 어머니에게 묻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유품을 찾는다고 무덤덤히 말한다. 마침 어머니도 그를 찾지 못한 것에 크게 화난 듯 얼굴에 인상을 잔뜩 쓰고 있고, 아들도 그런 어머니가 두려운지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이어 어머니는 아들에게도 창고에서까지 찾아본 것이 없느냐고 묻는다. 차분히 묻는 말이지만 마침 화난 상황이어서 그런지 자연스레 위협적으로 들린다. 그래서 두려운 아들도 넘어가지 못하고 못 봤다고 바로 대답을 한다.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어머니를 부른다. 오프닝에서 벌레를 먹던 소녀와 똑같이 생긴 여인인 딸 이네스가 나타나 어머니를 찾아 리타가 돼지를 찾았다는 얘기를 해준다. 화면이 바뀌어 저택의 앞마당 같은 푸른 잔디밭을 이네스와 마우로, 어머니가 함께 걷는다. 마우로는 이네스에게 어머니가 아버지의 유산을 찾고 있다 얘기해준다. 그러나 이네스는 어머니에게 남긴 것은 없다며 확고한 듯 냉정히 대답한다. 마우로는 어머니에게 리타에게서 트랙터를 가져 오라 지시하라고 얘기하지만 어머니는 그냥 놔두라 하더니 이네스와 함께 소총을 들춰 장전 한다.

 

 


 

 

그리고 영화는 다음 설명 없이 난데없는 다음 장면으로 전환된다. 헤드폰을 듣고 푸줏간 칼로 고기를 손질하는 한 여인의 뒷모습을 부드럽게 트랙 인하는 영상이다. 곧 누군가 그녀, 리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리타는 반응하지만 별 개의치 않는 듯 다시 고기 손질에 집중한다. 그리고 또다시 영화는 다른 장면으로 갑자기 전환된다. 그 날 저녁, 두 싱글 침대가 있는 방에서 누군가의 시섬으로 빈 상대방 침대를 보여준다. 오프닝에서의 문제의 여인과 같은 분위기의 이네스에게 리타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충격에 시달려 오프닝에서와 같이 짐승이 된 쌍둥이 자매에 대한 상처를 달래주고 있다. 오프닝의 여인 오로라는 이네스의 쌍둥이 자매였던 것이다. 곧 부감샷으로 찍힌 방 전경으로 그 둘과 함께 무턱대고 방 안으로 들어와 계속 유산을 찾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딸이 상처에 시달리거나 말거나 방 안으로 이러저리 신경질적인 걸음으로 위협적으로 뒤지는 어머니는 이네스와 리타는 조용히 무시해본다. 리타는 이네스에게 어머니가 무얼 찾는 건지 묻는다. 그에 이네스는 리타에게 바로 나가라 한다. 나서려는 리타에게 이네스가 다시 조용히 왜 돼지를 봤어요?”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한다. 그에 리타는 역시 무덤덤히 자기 정말로 봤고 그냥 도망갔을 거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어서 어떻게 쌍둥이 누이와 동물을 혼동하냐며 반문한다. 낮에 오로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또 새로운 다음 장면, 마당 앞 잔디밭을 오기에 찬 얼굴로 삽질을 하며 역시 아버지의 유산을 찾는데 혈안이 된 어머니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서 이번에는 마우로가 뒷마당에서 오래된 고기로 추정되는 무언가 위에 휘발유를 열심히(혹은 광적이게) 붓고 있다. 그리고 뒤에서 지켜보는 누이 이네스에게 아버지의 임종과 어머니가 찾는 유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임종 직전 아버지는 다짜고짜 어머니의 보물들을 가져오라 지시하였다고 한다. 몸이 약한데도 거부하면 때리려고 안달이 난 아버지를 거절할 수가 없어 할 수 없어 마우로는 어머니 보물들을 가져와 모아 놓게 되고, 아버지는 그 중 할머니의 목걸이를 냅다 삼켜 버렸다 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이네스는 그 충격으로 오로라가 실어증에 빠진 것이라 말하지만, 마우로는 그 직후에도 멀쩡했었다며 그 이유를 모른다고 답한다. 그리고 우린 잘못이 없어.”라는 수상한 말을 본능적으로 내뱉는다. 창고 안. 어머니는 다시 정신 나간 듯이 보물을 찾아 이곳저곳 뒤지고 그 뒤에서 리타는 똑같이 무덤덤히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으며 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곧 어머니가 리타를 두어번 부르지만 리타는 헤드셋 때문에 듣질 못한다.(왠지 그 모습이 정말 못 듣는다기 보다는 미친 안주인을 피하고 싶어 일부러 만든 핑계거리라는 느낌이 은근 든다.) 결국 성난 어머니가 소리를 질러 불러서야 리타가 급히 헤드셋을 벗고 반응한다. 역시 어머니는 창고에서 찾은 것이 없냐 묻는다. 리타는 정말 없다고 거듭 대답한다. 그 말을 믿어보며 다시 보물을 찾기 시작하다가 리타에게 그 옥수수로 요리 하지 마. 넌 재주가 없어.”라는 말을 잔인하게 내뱉는다. 그리고 리타는 그 말을 별 감정 없는 듯이 받아들이고 만다.

 

 


 

 

이어서 어느 온실, “나는 고기를 먹지 못하는 채식주의자다라고 기계 음성이 반복된다. 그 온실 안에서 아들 마우로가 길러지는 식물과 채소를 만져보며 그 음성을 입술로도 반복해 본다. 곧 카세트가 꺼지며 반복되는 음성도 멈춘다. 카세트를 끈 리타에게 마우로가 그 테이프는 아버지 것이라 말한다. 평소 인심 가득한 이전 모습과 달리 매우 방어적인 기세로 나오는 리타에게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었다고 조용히 말한다. 마우로는 아버지에게 대한 충격적인 또 위협적인 기억 때문에 그렇지 않다 답한다. 리타도 이해한다고 하며, 그런 리타에게 마우로는 아버지는 돌아가셔서는 안되는 거였다는 말을 나지막히 차갑게 내뱉는다. 그렇게 또 낯선 상황극을 맞이한 후, 가족들의 저녁 식사 자리가 된다. 근사한 고기와 옥수수 요리가 차려진 식탁에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가족을 생각한다는 위선이 느껴지는 연설을 한다. 자리에 나타나지 않다고 어느 순간 이중인화 되며 오로라가 저녁자리에 나타난다. 곧 어머니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오로라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화장실로 가서 토하라 지시하고, 오로라는 화장실이 아닌 자기 방으로 급히 달려가 침대에 엎어진다. 그리고 자기 목에 걸린 음식을 꺼내보려는데.... 음식이 아닌 실이 목구멍에서 나온다. 근데 그 실이 반짝거린다. 그렇게 나온 것이 고급스러운 금 목걸이다. 혹시 아버지가 삼켰다는, 어머니가 그렇게 미친 듯이 찾던 그 아버지의 유산이었을까? 그렇다면 저녁 식사로 먹은 고기는? 오로라가 그걸 계기로 충격에 실어증에 빠져 짐승처럼 된 것일까? 그럼 현재 오로라도 결국......? 그렇게 여러 의문이 드는 것이 잠시 영화는 바로 막을 내린다.

 

 


 

 

어머니의 보물을 막무가내로 삼켜 죽은 미친 아버지, 그 없어진 보물을 찾기 위한 집안 이곳저곳을 뒤지면서 분에 짐승처럼 으르렁대는 어머니, 아버지의 죽음으로 충격받아 짐승이 된 쌍둥이 자매, 가족을 더이상 믿지 못하게 된 아들, 그리고 옳고 그름을 선택할 수 없이 묵묵히 가족의 비밀을 묵시하는 가정부... 이 모든 상류층 가족 구성원은 <아메리칸 뷰티>(샘 멘데즈)<바람난 가족>(임상수)만큼이나 콩가루 집안의 모습이다. 각자 자기 감정과 탐욕, 상처와 역할에 의해 마지막 체면은 물론 인간성마저 상실해 버린 이들이다. 이 사건의 근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어쩌면 영화가 담지 못한 이야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봐야겠지만, 영화속 이야기만 놓고 보면 어머니의 보물을 없애겠다고 막무가내로 삼미다 질식사한 아버지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기가 죽음으로서 더 이상 애정이 없는 아내에게 재산을 빼앗길 수 없다며 보석을 삼키다 죽어버려 가족에게 충격을 주고, 어머니는 그런 탐욕스런 아버지의 재산을 어떻게든 차지하기 위해 미친 듯이 집안 이리저리를 뒤지며 똑같이 탐욕을 되물림 하게 된다. 이에 쌍둥이 딸은 충격으로 실어증에 짐승처럼 변해가고(그러나 왠지 아버지의 죽음과 별개로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품들에 집착하며 가정부 리타에게 자기가 아버지 유품을 만지는 게 무슨 상관이냐며 잔인하게 대꾸하는 성격이 된다. 결국 자식들도 알게 모르게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가족들에게 어떠하였는지 나와 있지 않지만, 분명 좋은 사람이 아닐뿐더러 독재적인 아버지였을 거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특히 오프닝에서 마치 발기된 성기처럼 오로라의 엉덩이를 행해 뻗어 있는 나무는 왠지 오로라가 실성과 아버지의 임종 이전까지 그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이미지적 암시를 주고, 아픈 몸으로 자신을 때리려까지 한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기억하며 자신이 그 아버지의 대를 이어받는게 마음에 즐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온실에서 리타에게 위압적이다 싶을 정도로 방어적 기세를 보이는 마우로의 모습에서도 아버지로부터 가부장제를 은밀히 주입받았을 거이라는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에게 낳아준 어머니의 성향은 전혀 다르지 않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받았다고 똑같이 위압적이고 권위를 표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가족 권력 계급 사이에서 그나마 따뜻한 어머니와 같은 모습은 보이는 가정부 리타 마저 적극 참여하는 듯이 아니면 노예처럼 복종하는 듯이(마침 그녀가 흑인으로 설정된 것도 이 점을 염두해 둔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묵묵히 가족의 시스템 혹은 비밀을 유지해 나간다. 영화는 이렇게 상류층 콩가루 가족의 세계를 초현실주의풍 공포물 영상 안에서 시각적 암시들과 황당한 에피소드들의 영상으로 해부하듯이 탐구하며 그 위선을 비웃는다.

 

 


 

그간 가족의 비밀이나 그로 대표해 보이는 인간 사회상을 어두컴컴한 미쟝센에서 자신만의 가학적, 그로테스크적 연출로 조롱한 감독들이 여럿 있었다. 캐나다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신체를 변형하고 훼손하는 환타지적인 바디 호러 장르에서부터 심리적, 육체적 가학으로 밀고 나가는 정신분석학적 스릴러로 미국사회와 문명사회에 대해 가족이나 연인과 같은 구성원을 중심으로 파헤치는 영화들을 만들어 보였고, 영국의 컬트 감독 켄 러셀 감독 역시 초현실적인 미쟝센과 사이키델릭한 영상 효과를 가지고 사회제도와 종교. 심지어 과학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인간의 폭발적인 위선에 대해 자극적일 정도로 가차 없이 공격했다. 이번 <카르네>도 그 공격적인 거장들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중세와 바로크, 가우디 양식을 섞어 놓은 전통적인 유럽-스페인 건축 양식의 공간 안에서 가학적인 행동들을 서슴없이 보이는 인물들의 에피소드들을 갑작스레 이러저리 전환하며 혼란을 주면서 마치 분리된 퍼즐을 맞추어 하나의 주제의식을 정연하는 과정들이 크로넨버그나 러셀의 주제의식이나 공격적인 영상 실험정신과 맞닿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따뜻함과 귀환으로서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가족이 세기말과 신세기 현대에 들어서면서 타락한 사회상이자 인간군상으로 대표되기 시작했다. 마침 현대에 들어 가족을 비롯한 지배 시스템으로서 도덕의 맨얼굴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이뤄지는 것도 있지만, 권력과 비즈니스의 자리가 커지면서 더 이상 가족도 안식처가 되어주는 세상이 되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아메리칸 뷰티><바람난 가족>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이 작품의 감독이 이런 실험적인 영상미와 비판적 주제의식으로 기존의 도덕에 대한 새로운 비판을 갖고 돌아왔으면 한다. 그렇게 차세대 크로넨버그나 러셀, 혹은 스페인 사회비판, 초현실주의 영화의 전통을 이어받아 루이스 뷰뉘엘, 빅토르 에리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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