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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축제>(2003) - 역사를 본다는 것

감독
이태훈 (taehoon Lee)
시놉시스
현대사의 비극중에 하나인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80년 5월 광주에 살던 일곱살 어린이의 눈에는 그 모든 사태가 축제로 보이는데...
영화감상
http://bit.ly/2f07sNp

최근 디지털 단편 작품들에 익숙해서 인지, (혹은 특유 고화질에 눈이 아파선지) 필름으로 만든 과거 단편영화들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90년대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필름 단편영화들을 더더욱 보고 싶어졌다. 우리나라 영상 보관 현실이 좋지 않다보니 거장들의 단편 데뷔작도 보기 힘든 판국이었으나 다행히 지속되어 온 여러 세대 감독들의 도움으로 몇몇 90년대, 2000년대 필름 단편들이 공개되고 또 리마스터링 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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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게 된 이태훈 감독의 2003년도 작품 <축제>가 그런 작품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의 발견을 하였다. 영화는 향수를 자극할만한 필름 화질에 역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우리나라 특유 동네 놀이공원에서 시작한다. 인형 사격 게임장에서 공기총으로 인형을 쏴 맞춰 타가는 모든 이가 공감할만한 따뜻한 장면으로 편하게 보는 이들을 유도한다. 그러나 주인공 어린 소녀의 집으로 전환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라디오에서는 전두환 대통령 연설과 폭도와의 전투가 벌어진다는 방송이 들려오고 가족들은 집 안에 갇힌 채 불안에 떨고 있다. 주인공 소녀는 꼭 갖고 싶은 인형을 타기 위해 빨리 놀이공원에 가자고 가족들을 보채지만 웬일인지 가족들은 신경이 곤두선 채 집 안에 얌전히 있으라고 호통한다. 시간이 지나 어찌 된 영문으로 가족들이 모두 나서서 집에 혼자 남겨진 소녀는 다시 놀이공원으로 몰래 나선다. 그 때부터 환상과 잔혹으로 가득한 소녀의 판타지 축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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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들고 환하게 소녀에게 웃어 보이는 청년, 누군가를 덮어 놓은 피에 물든 태극기, 전과 달리 한산해지고 어질러진 놀이공원 귀신의 집처럼 어두운 구석에 숨은 상처입은 청년, 자기와 똑같이 상품을 얻고 싶은지 총을 들고 온 군인 아저씨들, 그리고 연속해서 터지는 폭죽 소리...... 이렇게 나열 된 요소들만 봐도, 설명하지 않아도 이때가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사태 시기라는 점을 관객 모두 알 수 있을 만한 상황이다. 모두 알다시피 광주 민주화 운동은 수천명이 억울하게 사살당한 비극적 역사로서 쉬운 마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그러나 영화는 꿈많은 소녀의 시점을 통하여 동화적 판타지의 시각을 섞어서 그 잔혹한 역사를 은유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면서, 오히려 그 판타지를 통해 실제 역사의 잔혹성과 아이러니를 더 부각시키는 효과를 주었다. 여기에 이 모든 것을 함께 담은 우리나라 특유의 리얼리즘적 미쟝센과 색감 있는 촬영 및 놀이공원 특유의 컬러풀한 미쟝센을 서로 잘 섞어 역사의 비극과 이로서 만들어 내는 우울한 동화를 환상적으로 구현해 내었다. 지금까지 잔혹한 역사를 판타지적 영상과 은유를 통해 통찰적 시각과 독창성을 동시에 보여준 작품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 이후 오랜만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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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간의 비극적 역사나 사회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우리 영화들을 보면서 특유의 고질적인 문제인 직설적 표현과 한으로서의 감상주의에 거부감을 느껴왔었다. 물론 실제 했던 사건들이고 또 대다수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연히 비판 어조의 리얼리즘 표현으로 나가야 마땅하겠지만 (감정의 기승전결, 미남미녀 스타 배우 캐스팅 등) 애초에 상업성을 위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또 실제적 사실-사건 행위을 일깨워주기 보다는 (공포물이나 액션물처럼 인위적 오락으로서가 아닌) 실제 했던 폭력을 관객에게 들이대는데 집착함으로써 어떻게 관객이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를 배우고 사회문제를 현실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하며 위험성을 느껴왔다. 그저 우린 역사에 대한 분노만 얻고 그에 대한 고찰이나 분석 없이 우리 역사와 권력층에 대한 혐오감만 가지며 극장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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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잘 만든 역사 영화, 사회고발 영화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옛말처럼 역사의식이나 도덕적 교훈을 훈계하듯 지속적으로 설교하기 보다는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처럼 그 때 역사를 시청각적으로 몸소 체험하게 해주거나 <판의 미로>, <엘리펀트>(구스 반 산트)처럼 상징적 혹은 사실 그대로서의 영상만을 통해 관객 스스로 그 사건의 문제를 연구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그 점에서 이번 <축제>는 우리나라 사회고발 영화, 광주를 다룬 영화들 가운데 (장선우 감독의 <꽃잎>과 함께) 진흙 속에 숨겨진 보석이라 생각한다. 아트 센터 칼리지에서 영화를 전공한 만큼 아름다운 영상으로 표현하되 그로써 역사를 깊이있게까지 통찰한 이태훈 감독님의 환상적일 다음 작품을 볼 수 있기를 개인적으로 고대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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