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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독서충>(2016) - 사람 죽이고 살리는 책.... 과 같은 새옹지마 인생사

감독
도영찬 (Do young chan)
시놉시스
경제적 파탄과 이혼으로 삶이 황폐해져 버린 윤식은 죽음을 생각한다. 자신의 유일한 낙은 독서다. 그는 자신이 10년 넘게 다니던 도서관에 있던 모든 책을 다 읽고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결국 상 하권으로 이루어진 한 권의 책이 남게 되었다. 상 권을 읽은 윤식은 며칠 뒤 마지막 남은 하 권을 빌리러 가지만 이미 누군가 빌려가고 난 후다. 어렵게 도서관 사서에게 빌려간 사람의 주소를 알아낸 윤식은 그 책을 직접 받으로 간 다.
영화감상
http://www.cinehubkorea.com/bbs/board.php?bo_table=bbs01&wr_id=1341
오프닝부터 무시무시했다. 마치 촬영전부터 철저히 계획된 듯한 정확한 움직임의 틸트와 달리 샷부터 눈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으면 나는 죽을 것이다"라는 섬뜩한 나레이션을 갑작스레 내던지는 주인공의 나레이션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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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 빚을 지고 가족과도 헤어진 주인공 남자는 인생을 포기하고 동네의 도서관의 책을 모두 읽은 뒤 자살하기를 결심한다. 그저 그에게 남은 낙은 자신이 언젠가 조만간 죽을 거라는 것, 그리고 책을 읽으며 느끼는 현실의 고통을 잊는 기쁨 뿐이다. 곧 마지막 책 한권이 다가왔으나, 먼저 대출된 책이 제때 반납되지 않고 있고 대출자로부터도 연락되지 않는다. 결국 죽는 순간이 절박한 주인공은 대출자의 주소를 얻어 직접 책을 찾으러 갔다가, 그 집 주인인 청년과 함께 독서에 대한 즐거움을 공유하며 마음에 희망을 얻어 본다. 그러나 곧 그 청년이 사실 연쇄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영화의 이야기가 돌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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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얘기한 것처럼 오프닝의 무시무시함에서부터 정교한 촬영과 스피디한 편집 등의 기술적 압도감으로 전개되다 황당한 혹은 충격적인 반전에 다다르기까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체로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준다. 집중력 있는 영상으로 보는 이를 쉽게 이야기로 끌어들이고, 곧이어 주인공의 닫힌 내면을 나레이션을 통해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도서관의 책들을 모두 읽기까지 과정들을 스톱모션과 각 씬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전환 편집 등을 통해 속도감 있게 묘사함으로서 다큐멘터리적 느낌을 준다. 이는 이 긴 과정의 정보를 짤막한 시간 내 효과적으로 알려주는 동시에 주인공의 내막을 직접적으로 들이대면서 역설적으로 자살할 각오를 지닌 주인공에 대해 거리감을 갖게 하여 관찰자적으로 보게 한다. 이 점에서 영화가 영리한 (영상)연출 보여주고 있다
느꼈다.  

물론 진면목은 클라이막스에 있다. 마지막 책을 찾기 위해 대출자의 집을 찾아간 주인공이, 대출자로 생각한 집주인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며 독서에 대한 애정을 공유한다. 여기까지 보면 이렇게 주인공이 자살하려는 자포자기에서 다시 희망을 얻으갈 것 같은 휴머니즘을 기대한다. 물론 영화는(혹은 감독은) 이런 진부함을 바로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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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둘러보기 위해 2층으로 간 주인공은 한 방에서 최근에 실종된 소녀가 감금된 모습을 발견하고 급기야 연쇄살인마로서 본색을 드러낸 청년에 의해 함께 감금된다. 살인마가 총까지 든 위험의 순간, 주인공은 자살하기 위해 구입하여 여태 들고다는 칼로 밧줄을 잘라 역습을 시도한다. 이 때, 주인공은 그 간의 읽은 책 중 하나인 도스도예프스키의 <죄와 벌>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벌어본다. 그러더니 살인범이 자기는 책 안 읽는다며 책을 빌려간 진짜 집주인의 시체를 보여준다. 그리고 끝내 포박을 푼 주인공은 격투 끝에 탈출에 성공한다. 소녀와 함께 탈출하려던 중, 소녀에게 칼을 맞은 살인마가 마지막 발악으로 총을 쏘는데, 순간 주인공이 가지고 나가려던 마지막 도서관 책이 총알을 막아준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주인공은 끝장난 인생을 포기하기 위해 미친 듯이 도서관의 모든 책들을 읽어 나갔으나, 그렇게 죽기 위해 읽었던, 또 죽을 수 있게 해줄 마지막 책이 주인공을 죽이기는 커녕 오히려 총알을 막아주어 생명을 지켜주었다. 심지어 더 나아가 자살하기 위해 준비해 놓았던 칼도 주인공을 살려주는 역할로 전환됐다. 어쩌면 더 나아가서 보면, 사람 죽이는 살인마도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을 그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사채업자에게 욕을 하며 반항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경험을 제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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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난 남자의 지질한 일상을 보여준던 영화는 막판의 극적인 돌변을 통해 여러 아이러니들을 생성해 낸다. 죽을 남자가 살고, 그를 죽게 할 도구들이 그를 살리고, 그를 죽이려던 악한은 그에게 삶의 활력을 되찾아 주었다. 이 여러가지의 황당한 아이러니들, 블랙 유머를 통하여 영화는 왠지 웃음보다는 삶에 대한 통찰을 관객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주인공은 죽을 각오를 하면서 맞지 않게 굳이 도서관의 책들을 다 읽어야만 했을까에서부터 왜 독서여야만 했을까? 책에서 희망이나 다른 걸 느낄 수 없었을까? 남은 책 한 권 쯤이야 그냥 포기하고 넘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굳이 집을 찾아 가야만 했을까? 살인범은 왜 살인마가 되었을까? 왜 하필 그를 살린게 책이었을까? 

사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질문들을 연속적으로 던진다는 것은 (과도하게 해석하자면)어쩌면 감독의 의도-목적이 아닌 다른 세부적인 데에 더 집중한다는 점에서 그에 반하는 무례한 생각들일지 모른다. 그런 만큼 해봤자 무의미한 질문들일 것이다. 어쩌면 감독도 이를 염두해 있었을지 모른다. 결국 이 넌센스 같은 디테일들-혹은 아이러니들이 새로운 반전을 만들어 내고, 결국 아이러니를 따졌지만 원래 그렇게 아이러니로 넘쳐나는 세상사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고, 관객들도 그에 넘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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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죽을 수 없는, 살고 있으나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죽여주어야 될 것이 살려주는 살려줄 것이 죽여주는 황당한 세상. 원인의 결과 중심의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부정하는 것도 대책없는 처음의 주인공만큼 무책임한 행동이 아닐까? 만일 감독이 관객들에게 지적/훈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었다면 분명 그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는 계속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 거다. 이런 기발한 메세지부터 완벽한 교향곡처럼 정교하게 구성된 영상 연출까지 존경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정말 무시무시한 영화였다.  

(여담 - 확대된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은 책을 줄곧 읽어왔기에 지혜를 쌓아 살아남을 수 있었고, 책을 싫어한다고 대놓고 얘기한 살인마는 그래서였을 지는 몰라도 그런 짐승같은 살인마로 살다 최후를 맞았다. 여기서 나타나는 책을 읽은 자와 책을 안 읽은 자 간에서 드러나는 이성과 야만의 차이도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고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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