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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REVIEW

파도를 막을 순 없지만, 영화 ‘투 더 씨,To the Sea, Denize (2016)’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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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가 밀려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떠나가는 파도 또한 잡을 수도 없다. 인생에는 수많은 파도가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런 파도를 끊임없이 마주하며 살아간다. 결코 막을래야 막을 수 없고,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것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 투 더 씨,To the Sea, Denize (2016)’는 위와 같은 파도 중 사랑과 죽음을 다룬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을 이야기한다. 주인공들은 다가온 상황에 대해 거부하지 않는다. 덤덤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사랑에 기뻐하지도 죽음에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다. 이런 모습에 그들이 삶에 대해 도를 터득한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 투 더 씨,To the Sea, Denize (2016)’는 죽음과 사랑으로 구성되어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유누스와 그의 형 아뎀, 그리고 아내 이마인 사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뎀과 이마인은 유누스를 살리기 위해 의사를 고용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병세가 나아지지 않고 결국 주술사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한다. 주술사는 이마인에게 7개의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봄이 오는 첫 날 7개의 강물이 모이는 바다를 유누스와 함께 여행한다면 그가 병이 나을 것이라 말한다.

아뎀은 잡상인에게 낚시 추를 사려한다. 그의 동생이 함께 낚시 가는 것을 항상 소원하기 때문이다. 아뎀은 낚시 추를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끝내 추를 사지는 않는다. 아뎀은 이미 유누스와 함께 낚시를 갈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마인도 아뎀과 다르지 않다. 유누스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를 대할 때의 눈빛과 손짓은 전혀 따듯하지 않다. 그저 챙겨주는 것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항상 수동적으로 그를 대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어쩔 수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유일하게 자의적으로 행동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아뎀의 손길을 느끼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그녀에게서 유일하게 그녀가 진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봄이 다가오자 셋은 함께 바다로 향한다. 아내 이마인은 배에 누워있는 유누스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지평선으로 시선이 향한다. 아뎀은 노를 저을 뿐이다. 가는 길이 봄이라기엔 너무나 황량하다. 7개의 어항은 아직 다 차지도, 봄이 오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바다의 지평선으로 향한다.

 

 유누스는 죽어가지만 아무도 울지 않는다. 그렇다고 슬퍼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뎀과 이마인은 그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단지 죽음을 부정하지 않을 뿐이다. 또한 그들에게 다가온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인다. 거부하지 않는다. 마치 영화가 다가오는 파도는 막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하는 것이다.’ 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이마인과 아뎀이 다른 마음을 먹지 않고 유누스를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더라면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찾아온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많은 것과 마찬가지다. 오고 가는 것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조용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화를 곱씹으며 떠오른 생각 중 하나가 있다. 그들 같이 삶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도 좋긴 하지만, 쌔게 반항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받아들이기만 하는 삶은 재미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삶에 파도에 최대한 반항하며 사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본다면, 밀려온 파도를 거세게 맞받아친다면, 삶을 더욱 빛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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