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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REVIEW

사랑을 하다. '무덤지기(The Gravedigger’s Tale(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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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났는데 세상에 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죽은 시체가 유일한 사람이라면, 죽어있는 자 외에는 소통할 사람이 없다면 어떨 것 같은가. 좀비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공포영화를 말하려하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랑이야기를 하려한다. 바로 영화 <무덤지기>이다.

 

 

주인공은 사회와 등진 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의 직업은 묘지기’, 무덤지기이기 때문이다. 사회와 단절된 그녀는 자신의 활동지역 외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인들의 삶을 모른다. (심지어 사회에서의 불꽃놀이를 보는 그녀의 표정은 지나가는 개미를 보는 것만 못하다.) 그러니 공유하려는 노력조차 일절 없으며, 자신의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뿐이다. 관심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은 오직 시체에 무덤을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것뿐이다.

종이 울리면 시체를 거두러가는 그녀에게 어느 날 살아있는 사람이 도착한다. 그의 심장소리는 그녀의 차가운 심장에 뜨거운 불씨를 지핀다. 그를 살리기로 마음먹은 그녀 덕분에 그는 죽어가던 목숨을 부여잡고 일어서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저승사자가 찾아온다. 무덤지기에게서 죽은 이들의 영혼을 얻기 위해 찾아오는 것의 그의 일. 그는 시체들에게 해금연주소리를 들려주며 혼을 가져간다.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를 연주한다.) 이 해금소리를 듣지 말아야할 사람이 듣고 만다. 바로 무덤지기가 살린 그 사내다. 그는 겁에 질려 쏜살같이 달아난다. 이에 무덤지기의 뜨거웠던 심장은 갈피를 잃고 만다.

그를 잃으며 세상을 잃은 무덤지기는 결국 저승사자를 기다린다. 그가 나타나자 그녀는 그를 맞이하고 따라간다. 그렇게 영화는 막을 내린다.

 

 

무덤지기는 왜 그를 택한 것일까. 그를 택하면 죽을 것이라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던 그녀인데. 되짚어보건대, 애초부터 그를 사랑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진짜 사랑을 하던 것은 어느 날 찾아온 그 남자가 아니라 매일 같이 찾아온 저승사자였으니 말이다. 그녀를 찾아온 것 중 소통이 가능한 것은 그 뿐이었으니 말이다. (직접적인 소통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저승사자가 내는 해금소리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 역시 그녀를 사랑했으리라.)

고립은 그녀에게 고독을 주었지만 동시에 가슴깊은 사랑을 주었다. 사회는 그녀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동시에 슬픔을 주었다. 고독과 사랑은 항상 공존한다. 그녀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심장을 가지고 노는 듯한 애틋한 사랑과 세상에 다시 모든 게 없어진 듯한 고독감이 그녀를 혼란케 했다. 이것은 그녀에게만 작용되는 특이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해본 모든 이들이 공감 가능한 사랑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사랑을 아는 이들의 심장에 날카로운 칼을 꽂는 것처럼 가슴 아프고 애절하게 다가온다.

저승사자를 보며 애틋한 미소를 띠는 장면이 선명하다. 그녀의 설렘과 순수성이 그대로 녹아든 장면이다. 그녀의 미소를 생각하며 지금까지의, 현재의, 미래의 사랑을 준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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