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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REVIEW

윌리 빙엄의 경우(2015) - 기념비를 제조하는, 정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야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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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고백부터 시작해야겠다성범죄자 처벌이 이슈가 되었던 시기 화학적 거세 처벌형이 발헌 되었을 때 나는 그 제도에 반대하였다물론 사회로 석방된 범죄자들이 재범을 일으키고 더 이상 피해자들(특히 미성년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거의 근절해 내듯 처벌을 더 두드러지게 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지만그렇다고 마치 가축에게 하는 영양제 주사나 번식 방지를 위한 거세술과 같은 방식의 처벌이 똑같이 야만스럽다 느꼈기 때문이다무고한 여성들을 강간한 이들을 어떻게 인간으로 보겠냐고 반문 받을 수 있지만일단 법이 인간의 감정을 최대한 덜어내고 객관적 판단에 의해 판결을 내리는 것이 본질인 일명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점에서 어떤 범죄자라도 같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권을 지키면서 벌금부터 사형까지 처벌 여부를 철저히 검토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생각한다그럼으로써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포기하고 야만으로 해를 끼친 이들에게,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도리, 즉 이성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 현대 지성인으로서 목적이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화학적 거세형은 통과되었고, 그 후 지금까지 전해져온 이 과정 및 이와 연관된 기타 현상들로 봤을 때, 혹시나 했던 대로 단순히 재발을 막기 위한 것도 경고 및 심판 메세지 차원이라기보다는 피해자들의 만족감과 성범죄를 향한 (혹은 어쩌면 음란하거나 개성적이거나 그 어떠함을 불문하고 성문화, 성적취향 그 자체에도 향한)경멸감 조장이 우선순위인 (사회와 대중이 의도했든 무의식적이었든)보복형 처벌로서의 풍토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그들이 더 이상 공격성 및 성욕을 느끼지 못하도록 기계적으로 개조할 것인지아니면 철저한 심문과 유도로 자신의 범죄가 왜 그른 것인지 사유하게 만들어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게 할 것인지를 묻는 <시계태엽 오렌지>(스탠리 큐브릭)의 질문엔 이젠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큐브릭 감독과 원작자 앤소니 버지스 이후, 매튜 리차드 감독은 단편 <윌리 빙엄의 경우>를 가지고 이 질문을 다시 해내고 있다.

 

한 중년 의사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영화는흉악범에게는 피해자의 요구에 따라 살아있는 상태에서 신체 일부를 절단해 나가는 형벌이 발헌된 가상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이 새로운 형벌의 첫 시험자로 미성년자 성폭행 살인 혐의로 수감된 윌리 빙엄이란 남자가 채택된다형 집행을 책임지게 된 중년 의사는 자신은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핑계를 절규로 내뱉는 빙엄에게 이 기회로 세상에 새로운 교훈을 주자는 별 도움이 안되는 말을 역설적이게도 다정한 목소리로 말해준다결국 피해자 유족의 요구에 따라 오른 손목부터 자르는 첫 형벌이 진행되고이후 빙엄은 여러 초,,고등학교를 전전하며 자신의 흉악 범죄의 댓가-잘려나가고 없는 오른 손을 공개한다이후 유족의 두 번째 요구인 양 다리와 왼팔을 제거하는 두 번째 형벌이 진행되고휠체어에 앉게 된 빙엄은 계속해서 자신의 끔찍한 몰골이자 죄의 댓가를 어린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경고를 표한다심지어 그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한 남학생은 신체가 절단된 그의 모습을 흉내내며 마치 장애인 비하하듯 그를 조롱한다.

 

팔다리 모두 절단 되 더 이상 절단할 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은 그의 눈과 혀장기까지 제거를 요구한다점점 윌리 빙엄은 살아있어도 인간의 모습을 잃어가고그렇게 침대에 누워 꼼짝할 수 없게 됨에도 여전히 대중들에게 흉악 범죄 경고의 대상으로 외부 이곳저곳을 나돌아 다닌다집행 의사는 유족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외부에서의 비인도적인 형벌 제도에 대한 항의에도 민감해진다그러나 그는 임무이기에또 신념이 있기에 멈출 수 없다.(혹은 어쩌면 이 배경과 상관없이 애초부터 멈추지 않길 원하였을 것 같다.) 이제 윌리 빙엄은 인간이 아니다그는 살아숨쉬는 껍데기만 남은 흉악범죄 경고 기념물이나 다름없다.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병실을 가리키며 화면을 향해관객을 향해 의사는 이번 주말에도 윌리 빙엄씨는 학교에 간다고 나레이션을 날리며 영화를 맺는다.

 

내가 그동안 하던 고민을 정확히 꼬집어 낸 영화였다사회학과를 다닌 입장에서 나도 부정부패와 허술한 형법에 맞서 정의 실현을 위해 싸우길 지향했지만그 과정에서 피해자피지배자 중심의 주장들을 들어야 했다단순히 최근에 나돌아다니는 조악한 표현인 ‘피해자 코스프레나 새롭게 대두된 ‘피해자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니라일단 정의가 계급이나 인종 및 성별 등의 입장을 넘어서 같은 인간으로서 공정하게 사욕이나 여타 감정 없이 고민되어지고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라는 문제에서였다그렇게 인간 모두에게 공정히 적용되면서 또 동시에 각자에게 맞을 수 있게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이 곧 정의와 평등의 지름길이자 인간다움으로서의 승리라 믿기 때문이다그러나 주변에서는 같은 인간의 문제으로서의 문제보다는피지배자 및 피해자들의 고통만을 부분별하게 내보이고 듣게 만들며 곧 그에만 집중하는 현상들을 보였다물론 같은 감정이 있는 인간이기에 그 감정을 듣고 맞춰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법과 심판이라는 것이 앞서 말한 것처럼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고 이성적인 논리원칙에 집중하여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대중들이 이에 다소 무관심하다는 것이 오히려 탐욕스런 부정부패 지배층만큼 광기어리다 느꼈기 때문이다단순히 광화문 촛불집회와 같은 폭발적인 혁명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그 권리도 국민의 기본권이고또 법이 문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국민의 뜻에 따라 고칠 수 있는 사항 역시 헌법에 있다다만 유명한 명제인 “큰 힘엔 큰 책임에 따른다는 명제에서 보면(역시 큰 힘을 지닌 정부야 말로 당연하지만공식적으로 국가와 세계의 주인인 민중-혁명이나 단결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닌 우리에게도 예외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 근대 철학자이자 현대 철학의 기틀을 마련한 프리드리히 니체는 문명 사회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냉철한 주장들로 자신의 새로운 철학을 공고히 했다특히 그가 강조한 것들 중 하나가 역사를 보는 시각역사관이었는데그는 역사관을 ‘골동품적 역사관’, ‘기념비적 역사관’, 그리고 ‘비판적 역사관’ 세가지로 나누었다. ‘골동품적 역사관은 이름처럼 한때 빛났지만 끝나버려 과거에 불과한 ‘망각하는’ 역사관을 뜻하고, ‘기념비적 역사관은 찬란했든 암울했든 그 역사를 치켜세우며 자신들을 강하게 내보이는이름처럼 기념하기 위해 '기억을 강요하는’ 역사관을 뜻하고마지막 ‘비판적 역사관은 빛났던 암울하던 좋게 기억하든, 나쁜게 기억하든 상관없이 찬미와 비판을 함께 지니며 객관적으로 분석하보자하는 '적절한 기억과 망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역사관을 의미한다니체는 당시 산업화와 제국주의를 통해 자국민 우월주의와 이방인 박해로 질주해내가는 유럽 사회를 향하여 마침 그들이 대놓고 내비추는 ‘기념비적 역사관을 비판하고 ‘비판적 역사관으로 돌아보기를 주장하였다그리고 니체의 경고대로 당시 서구의 ‘기념비적 역사관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로 이어지게 되었다.(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치 독일은 이 과정에서 니체의 이 주장을 남용하였다.) 영화에서 윌리 빙엄은 천하의 악랄한 범죄자지만 그 결과 그는 단순히 범죄를 저지른 죄인 혹은 추방자도 아닌 유족과 사회 중심으로 만들어진 기념비 그 자체가 되었다그야 말로 ‘기념비적 역사관이 된 셈이다그는 단순히 죄인이나흉악 범죄를 저질러 인간의 자격에서 추락한 이가 아닌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교훈(그보다는 차라리 공포)을 심어주는인간도 생물도 기본적 존엄성이 있어야 할 생명이 아닌기념물 즉 물건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이라는 저서에서 또 이런 주장을 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너무 오랫동안 들여다보면그 심연도 그만큼 우리를 들여다 볼 것이다.” 개인적으로 항상 마음속에 품어 온 명제는정의와 평등 세계 실현의 물결이 전 세계적으로 퍼진 현재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나를 비롯해 우리는 권력과 백인우월주의그리고 남성우월주의 및 이성애 중심주의와 긴 역사 동안 싸워왔다그리고 나는 그 끝에 평등해진 모두가 평화롭고 다정한 성격을 가진 이상 세계가 올 것이라 믿었다그러나 지금 그 믿음에 더 이상 없어졌다그 물결은 현재 그동안의 억압적 역사에 대해 돌이켜보고 현재를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그 사상이 오히려 세상의 치료제를 넘어 지배적인 이념으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단순히 선과 악옳고 그름을 고민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선이나 옳음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않으면 죄인정도가 아닌 인간이 아니게 된 것이다.(소수자와 여성을 향한 비하언어를 금지하자고 주장하면서그들을 비하한 다수자 집단 및 개인에게는 새롭게 등장한 다수자 비하 언어를 쉽게 내던지는 현대(온라인)가 이를 증명한다.) 나는 현재 이 현실에 대해 괴물과 싸운 그들이 괴물의 방식을 배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위험한 주장일지 모른다내 주장 역시 순수하게 선하고 정의롭고 그만큼 사리사욕이 없다는 보장이 없고나도 주장하면서 괴물이 되어 가고 있을지 모른다그래도 나는 이 니체의 주장과 함께 동시에 존경하는 현대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유명한 명제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를 항상 명심하고 있다. 내가 정말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비관적이거나 혹은 무분별하게 반항만 하는 말썽꾸러기일진 몰라도나는 끊임없이 세상과 내 자신에 대해 돌이켜 성찰해보고자 한다그것이 인간으로서 세상을 사는 방법이라 믿기에.

 

수술실과 병원교실과 감옥 등에 맞는 차가운 광택의 미쟝센감정과잉을 피하기 위해 클로즈업과 잔혹 장면들을 자제하고 안정된 평각 화면구도에서 다큐처럼 진행하는 촬영과 편집그리고 주인공 의사를 연기한 그레고리 J. 프라이어의 모노톤 목소리로 진행하는 (자연 다큐멘터리 나레이션 같은)차분한 나레이션까지 하여 끔찍하고 깊은 고민의 주제의식을 자극적이지 않게, 주장보다는 분석하는, 정말 극영화라기보다는 사회적 이슈나 철학적 고찰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영화 속 학교에서의 강연처럼)강의 같은 전개와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지금 각종 사회문제와 부패에 시달리다 비정한 대통령을 탄핵한 후 새로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움직이는 현 대한민국에서 이 작품이 어떻게 비춰 보이고 평가될지 궁금해진다. 더불어 이 작품을 만든 캐튜 리처드 감독이 혹시 차기작으로 새로운 문제적 문제의식(?)을 들고 찾아올지도 궁금해진다. 만일 그럴 경우, 21세기판 큐브릭을 기대해보는 바이다.

 

(여담1 -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사는 오스트레일리는 현재 이런 흉악범죄에 대한 어떤 처벌법이 논의중일까? 나는 단순히 감독이 자신의 상상력이나 외부 사회, 국가, 과거 역사에서의 사례만 갖다가 썼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과연 이 작품에 대한 오스트레일리아 관객과 비평가 입장에서는 또 어떨지도 궁금하다.)

(여담2 - 이 리뷰에 영감이 된, 지금까지도 큰 삶의 교훈으로 자리잡고 있는 '비판적 역사'를 가르쳐준 책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효형출판사)의 저자 이왕주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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