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REVIEW > GUEST REVIEW
GUEST REVIEW

<헌팅데이>(2016) - 웰컴 투 유라시아 웨스턴!!

6 비커밍레이미프로덕션 0 43 1 0

http://www.cinehubkorea.com/bbs/board.php?bo_table=bbs01&wr_id=1469 

 

100여년 간의 영화 역사에서 웨스턴, 즉 서부극은 그 시대가 이젠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장르이자 세계관으로서 끝까지 살아남은 것을 넘어 미국 너머까지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으며 각종 문화적 영향으로서 긴 수명을 유지해온 특이한 장르이다. 공포, 코미디, 로맨스와 같은 다른 장르들도 긴 역사를 연명해 온 건 마찬가지지만, 이 장르들이 각자 맞는 감정 코드와 이를 이끌어내는 연출 솜씨만 있으면 어떻게 표현되든 상관없는 것과 달리 웨스턴은 총기류라는 특수한 소품, 사막과 같은 황량한 배경이라는 특정한 장소와 미쟝센, 그리고 폭력적이고 암울한 특정 정서만이 있어야 그 진수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또 서양이나 아시아나, 유럽이나 미국이나 각기 고유 국가 문화의 특성을 표현하는 특정 장르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 대다수 시대 변화와 지구촌 문화 유입으로 100년간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미국의 역사에서 시작된 웨스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유럽 백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정착하며 자기들이 소위 인디언이라 부르던 원주민들을 정의와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학살해 더 황폐해진 사막 위에다 도시를 건축하였지만 민법이 위약했기에 강도들과 총잡이들의 잔혹한 세력 싸움이 들끓었던 그 시대, 시대 가치의 변화에 따라 더럽고 야만적인 옛 역사로 치부되어야 마땅한 그 역사 장르가 20세기, 21세기에 더 이상 먹히기가 어려울 거라 의심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60~70년대 뉴 아메리칸 시네마 웨이브의 현대적이거나 미래지향적인 영화 운동으로 웨스턴 장르는 멸종과도 같은 쇠퇴길에 접어들었었다. 그러다 70년대 말~80년대 초반 웨스턴 장르가 부활했다. 그 계기는 미국이 아닌 다름 아닌 이탈리아에서였다.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고전 헐리우드 서부극 공식에 충실하면서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만든 이탈리아 웨스턴 3부작 <황야의 무법자>, <속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시리즈가 전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네오 웨스턴장르가 나타났다. 물론 이 유행은 주로 이탈리아 중심이었으나, 이 세르지오 레오네 덕분에 스타가 된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감독한 <용서받지 못한 자>가 헐리우드에서도 네오 웨스턴 바람을 일으켰다. 그렇게 <툼스톤>(조지 P 코스마토스), <퀵 앤 데드>(샘 레이미), <3:10 투 유마>(제임스 맨골드), <트루 그릿>(코엔 형제)까지 지금까지도 웨스턴 장르는 계속 만들어 지게 되었다. 

 

그러나 신화는 미국에서 끝나지 않았다. 2000년대부터 미국 외 국가들도 웨스턴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일본을 배경으로 총잡이와 사무라이들의 혈전(?)을 그린 <스카야키 웨스턴 장고>를 내놓았고 태국에서도 만화적 상상력을 뒤섞은 <검은 호랑이의 눈물>(위싯 사사나티엥), 우리나라에서는 김지운 감독이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에게 오마쥬를 표하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을 내놓았다. 사실 이 국가들에서의 웨스턴 유행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일본의 경우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고전 웨스턴 장르를 사무라이 장르로 이식시킨 <7인의 사무라이><요짐보>가 있었고(이 영화들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에게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운의 거장 이만희 감독이 먼저 세르지오 레오네에게 오마쥬를 바치는 <쇠사슬을 끊어라>가 있었다. 그 외에 북유럽이나 러시아에서까지 웨스턴 장르를 표방하는 영화들이 제작되었고, 심지어 현대나 SF적 미래를 배경으로 하여도 똑같이 황량함을 배경으로 거친 분위기를 풍기는 총싸움 컨셉을 유지한 변종 웨스턴 장르들이 만들어졌다. <아웃랜드>(피터 하아암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코엔 형제), 심지어 <아저씨>(이정범)나 올해 개봉한 <로건>(제임스 맨골드)도 그 장르의 영화들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서부개척 시대의 사막만큼 비슷하게 스산한 정서를 지닌 북유럽과 유라시아(유럽과 러시아 경계 국가들)에서 그들만의 서부극이 만들어지는 현황이 많이 보인다. 특유의 어두우면서 그만큼 우수가 흐르는 문화적 토대와 그에 맞춰 공포물이나 폭력적인 내용의 문학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대중들의 취향에 힘입에 눈덮인 알프스 산맥 혹은 찬바람이 부는 수풀 초원에서 벌이는 총싸움 웨스턴들이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헌팅데이>도 딱 그런 풍으로 만들어진 유라시아 국가 라트바이에서 온 무성(無聲) 웨스턴 영화다. 울창한 숲에서 멧돼지를 사냥하기 위해 엽총을 든 한 무리의 남자들을 보여주는 첫 장면부터 이 영화가 웨스턴 장르를 표방함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곧 멧돼지를 조준한 엽총이 비장한 분위기로 발사되면서 영화는 그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어느 광활한 초원의 시골집.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는 늙은 어머니와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적극적이어 보이는 딸, 그리고 모자라 보이는 그녀의 형제(나이가 있어 보이는 게 왠지 오빠같다-저자 생각) 셋이 식사를 준비한다. 그러나 사냥에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는다. 숲을 찾던 남매는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한다. 남겨진 세 가족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보며 안타까운 식사자리를 갖는다. 아버지를 잃은 충격에 빠진 채 혼자 돼지 족발 요리를 다듬지도 못하는 오빠에게 무덤덤이 직접 고기 조각을 잘라 주던 딸은 범인을 직감하고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한다.

 

집안의 총기류들을 챙긴 남매가 함께 사냥을 갔었던 아버지의 친구 집을 찾아가 복수를 시도한다. 집안 창고를 살피던 도중 아버지 친구의 어린 딸을 발견한 남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 뒤에서 나타난 아버지 친구와 첫 결투를 벌인다. 딸이 혼자 남자를 상대한 사이 모자란 오빠는 남자의 딸을 쫓아간다. 다시 집안에서 남자의 형제와 오빠간의 결투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번엔 어린 딸이 대범하게 오빠 다라에 도끼질을 한다. 다리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찰나 오빠는 똑같이 위험한 남자의 어린 딸아이에게 발길질로 맞선다. 그리고 다시 남자의 형제와 결투 끝에 주인공 여동생의 도움으로 두 남자를 체포한다. 둘을 자신들의 돼지우리로 끌고 간 남매는 둘의 얼굴에 총을 겨누고 복수를 시작하려 한다. 그러나 그 순간, 주인공 딸이 총에 맞아 쓰러진다. 놀란 오빠가 겁먹은 상태에서 돌아보니 남자의 어린 딸이 엽총을 들고 쫓아왔다. 이번에는 남자가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이고 오빠는 늦기 전에 원수인 남자를 처단한다. 그리고 이번엔 남자의 형제와 결투를 벌이지만 하필 갖고 있는 리볼버에 총알이 떨어졌다. 무방비 상태의 위험한 순간, 오빠는 재빨리 총알을 챙겨 남자의 형제와 몸싸움을 하는 상황에서 겨우 총알을 장전해 그도 해치운다. 이제 원수의 딸만 남은 상황. 그러나 총알 한 방만 장전하는 바람에 순간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결국 그도 남자의 딸에게 죽는다. 그렇게 끝난 것 같은 영화는 갑자기, 오프닝으로 다시 플래시백 시킨다. 주인공들의 아버지가 막 잡은 돼지를 끈으로 묶으며 챙기고 있다. 그 순간 총이 발사되고, 아버지가 쓰러진다. 총을 쏜 인물은 놀랍게도 아버지의 친구의 어린 딸이다. 급히 납자가 달려와 딸의 총을 빼앗아 챙기고는 죽은 주인공들의 아버지 앞에 선다. 그렇게 어린 소녀와 아버지, 그의 형제가 어두운 분위기로 서있는 것을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초반부 긴 호흡의, 애초 무성영화를 지향한 만큼 별 대사도 음향도 배경 음악도 없는 것을 비티면 눈을 의심케 하는 액션씬을 볼 수 있게 된다. 2~3 정의 총기들과 집과 돼지 우리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총알의 미비함과 함께 오는 긴장감 연출이 훌륭하다. 동시에 가족의 복수라는 전통적인 웨스턴 스토리의 모티브와 잘 결합되 이 영화가 라트비아라는 미국 외 국가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기존 헐리우드 웨스턴 장르 공식 그대로 잘 꿰어 맞춰진 영화였다. 물론 사막이 아닌 숲과 길게 자란 수풀이 우거진 초원에 과거 개척시대가 아닌 비교적 현대를 배경으로 하였지만, 총싸움과 폭력성, 복수극과 비장함으로서의 웨스턴 공식에 충실히 맞추었다. 심지어 총기류도 현대에 만들어진 자동 장전식이나 소총이 아닌 구식 엽총에 리볼버를 선택한 것도 탁월했다. 때론 포커스를 바꾸며 뒷배경 인물에서 화면 바로 앞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는 기법과 인물들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얼굴 클로즈업으로서 세르지어 레오네를, 아버지의 빈자리나 돼지 등 인물들의 분노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서트부터 화면 속 인물이 모르는 사실을 관객에게만 보여주어 서스펜스를 유도하는 식으로 알프레드 히치콕을 흉내내며 설명없이 영상 스토리텔링만으로 긴장감의 절정을 시도하려는 실험성도 눈에 띄었다.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정말 웨스턴 장르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엔딩에 대해서 과연 어린 소녀가 주인공들의 아버지를 죽인 게 자기 아버지와 함께 한 의도였는지 아니면 돼지가 살아있는 줄 알고 잡으려다 실수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원래 서부극이 도덕이 잠재되어버린 환경에서 선이든 악이든 의도치 않은 원인으로 피 혹은 복수극을 자초하는 스토리라는 장르 공식에서 보았을 때, 이 역시 나름 이해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설정이다. 황무지만큼 살기 척박한 초원 시골 밭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였던 총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실수던 서부시기 특유의 문명의 이기는 이 환경상(혹은 장르상) 피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장르에 대한 애정, 국적과 시간대를 불문한 하이브리드적 연출, 대사로서의 설명 없이 몸짓과 스산한 사운드 분위기 등 무성영화 방식으로서 순수 영화적 문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찍은 단편 웨스턴을 보면서 오랜만에 화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웨스턴 장르나 그 스타일을 흉내낸 영화를 찍고 싶은 입장에서 용기를 준 작품이었다. 적은 예산, 독립영화 방식에 한정된 환경으로도 타이트하게 연출하면 뒤지지 않는 웨스턴을 찍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실제로 최근 웨스턴 장르를 실험하는 독립영화들이 각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존 웨인이나 이스트우드 같은 화려한 스타나 화끈한 승마 및 총싸움 액션이나 사막 배경이 없어도 도시 특유의 느와르 분위기나 주차장 등 공터 특유의 공간이 그 분위기를 대신하고 총이 아닌 칼싸움도 마주 본 상태에서 누가 먼저 내미느냐의 대결로 충분히 재현된다. 또 이들을 불문하고 비정한 마초적 인물들의 심리적 갈등이나 연기로도 이를 충분히 살릴 수 있기도 하다. 이런 아이디어들 역시 <헌팅데이>에서도 드러난다. 과연 이 감독이 장펴뉴 웨스턴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저 기다려 볼 수 밖에 없겠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을거란 생각에 기다리는 것도 흥미진진해진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