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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REVIEW

404호(2013) - ‘237호’와 반대되는, 혹은 연장선상의 공간 ‘4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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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호텔 혹은 여관은 현실에서와 달리 매우 매혹적인 공간으로 표현된다. 현실에서는 집 밖을 떠난 이들이 잠시 쉬어가거나 직업적 작업에 몰두하기 위한 외부 숙박 장소가, 영화 속에서는 인물의 내면과 세상사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상징화 해내는 초월적인 공간으로 상징화 되곤 한다. 특히 공포 장르에서 더 그렇다. 여기서 호텔방, 여관방은 단순히 사각의 공간이나 인물과 세상사를 상징해 보이는 공간을 넘어 그 특유의 미쟝센을 통해 예측불능의 초현실적 공간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이 안에서 주인공들은 안전하지 않으며 그 공간이 지나간 남다르거나 끔찍한 역사와 마주하면서 일탈적 혹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공포를 맛보게 된다. 이러한 영화 속 호텔 묘사의 고전인 <샤이닝>은 물론이고 <바톤 핑크>(코엔 형제), <1408>(미하엘 호프스트렘), 심지어 밝은 코미디로 표현되었지만 다른 세계관같이 표현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웨스 앤더슨)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일탈적인, 혹은 초현실적으로 공간으로서 호텔 방, 여관방은 영화감독들에게 항상 매혹을 제공해온 공간이다. <404>도 마찬가지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초현실적 공간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종수는 한 허름한 여관에 들어서 방을 구한다. 들어오자마자, 누군가 여관 입구 안에서 작은 의자 위에 불안정하게 서있다. 로우앵글로 발목만 잡아 목 매달아 자살하려는 현장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그저 늙은 여관 주인이 전구를 가려는 것일 뿐이다. 현금을 무성의하게 던져 놓고 404호로 방을 잡고 들어선 종수는 바닥에 깔은 이력서를 보다가 흰 종이 위에 연필로 유 서라 적기 시작한다. 그러나 용기가 안 나 술 한 병을 급히 들이키는데 그만 사례가 걸려 술을 내뱉는다. 그 바람에 종이가 젖어 유서를 마저 쓸 수 없게 된다. 할 수 없이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에다가라도 유서를 써내려 하는데, 연필을 갖다 대는 순간 전화가 울려 휴지를 찢어 버린다. 짜증이 터지려던 찰나, 전화를 받은 종수는 장례업체에서 어머니의 유해 안치 기간이 만료돼 새로 22만원을 입금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그 소식을 받음에 맞춰 고개를 돌려 보면, 갑자기 어머니의 유해 단지가 나타난다. 그것이 종수의 환영인지 안치할 돈이 없어 들고 다니다 여관 방에 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어머니의 묘까지 지킬 수 없을 만큼 돈 없는 사면초가가 되자 종수는 발악을 시작하고, 결국 유서쓰기를 포기한 채 자살용 수면제 통과 술을 함께 들이킨다. 그렇게 바로 약 기운이 오면서 종수의 정신은 흔들리기 시작하고, 종수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듯하다. 종수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여관방 사방 벽 여기저기에 떠도는 알 수 없는 그림자 환영들이다.

 

얼마나 정신을 잃었을까? 누군가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치며 종수를 깨우려 한다. 그래도 종수는 잠투정 부리는 듯이 일어날 생각을 안하고, 손이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고 그 후볐던 손가락으로 입안 볼짝을 잡아 당겨서야 종수가 깨어난다. 종수 눈앞엔 한 세일즈맨 정장을 입은 통통한 체구의 남자가 종수를 부르고 있다. 기이한 남자의 갑작스런 등장에 종수는 식겁하며 일어나고, 남자는 정말 세일즈맨스럽게 옷 안에서 명함을 꺼내주며 자신을 소개한다. ‘육체기증 업체라는 아리송한 비즈니스가 써져 있는 명함의 주인공 승덕은 종수가 조금만 늦었다면 바로 지옥행이었을 거라며 안도를 내뱉는다. 여전히 종수가 어떻게 된 건지 혼란스러워 할 때, 승걷은 종수가 자살을 기도했던 기억을 되새기게 해주고, 곧 자살은 큰 중죄라 가차없이 지옥행이라 설명해준다. 그리고 지옥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주겠다며, 지옥도가 그려진 그림 샘플을 보여준다. 온 천지가 씨뻘건 불바다로 묘사되어 있는 가운데, 순간 그림에 없던 무서운 귀신같은 얼굴이 그림 전체 화면으로 튀어나온다! 종수도 그 그림에 겁을 먹고, 그런 가운데 승덕의 지옥행 설명은 계속 된다.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어 하지만 천국 혹은 지옥에 가는데 있어 그 기준은 누구에게 예외 없이 엄격하고, 지옥에서의 나날은 매일 매일이 전쟁터라 할 정도로 고통스럽다 한다. 여기에 자살은 큰 중죄라 역시 지옥행을 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부 자살한 영혼들은 지옥행을 면하는 대신, 일종의 환생으로 자살한 다른 이의 육체를 빌려 살아가고 육체의 주인 영혼은 천국행으로 가는 일종의 교환 방식으로 서로의 운명을 바꾸는 서비스가 있다 설명해준다.

 

이어서 승덕은 사실 자기 역시 자살자라 고백하며, 가족과도 뿔뿔이 헤어지고 실패한 세일즈맨인 자신이 성공한 유일한 세일즈가 자살기도 모임 및 집단 자살 성사였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한다. 막상 다른 사람들과 같이 목숨을 끊고 나니 또 지옥에 가야 할 신세가 되니 삶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되었고 그렇게 함께 죽은 사람들과 함께 404호에서 똑같이 자살을 기도한 이들과 육체기증 서비스를 교환하는 역할로 남아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집단에서 자기만 남게 된 승덕은 마침 들어온 종수에게 육체기증 서비스를 제안하러 나타난 것이다. 이런 상황이 아직 애매모호 한 종수는 자살까지 기도했으면서 왜 다시 살고 싶어 하는지 묻는다. 그에 승덕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으로 답해준다. 자신이 빚도 있고 체력도 허약함에도 불구하고 상관없다는 승덕의 계속되는 제안에 종수는 계약서를 작성해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순간 떠올라, 천국으로 올라가기 전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지막 소원을 들어달라 한다. 마지막 소원이니 승덕은 들어 주겠다 하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도 자살 기도자라 지옥에 있을 거란 얘기도 받는다. 이에 승덕은 지옥에 있는 영혼들의 경우는 면회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우려를 표하지만, 마침 자기 서비스를 받은 지인 영혼 중 한 명이 저승 관리인이 되었다면 연락을 취해 마침내 어머니와의 일시적 만남을 성사해준다. 어머니와 다시 재회한 종수는 자기도 포기하려 한만큼 힘들었던 삶에 대한 애절함을 시원하게 토해낸다. 그를 보던 승덕도 (함께 여관에서 죽었는지, 다른 곳에 있는지 모를)자신의 딸과도 만나본다.(혹은 회상한다.)

 

이제 모든 소원 서비스가 끝나고 계약 서명만 남은 상황에서, 종수는 마음이 바뀌었다며 계약 거절을 밝힌다. 승덕은 이미 작성되어 가던 계약서와 다시 이승에 살아도 고통스러울 뿐이라고 얘기해주지만, 종수는 아까 어머니와 만남에서 앙금을 털어낸 만큼 힘겨워도 꿋꿋이 살고 싶은 의지를 보인다. 그 순간 승덕은 자신은 반드시 환생해야 한다며 종수를 덮쳐 강제로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만들기 위해 몸싸움을 한다. 그 때 마침 여관 방 수납장 문이 저절로 덜그럭거리며 열리고 닫히기를 보이더니 갑자기 흉측한 검은 손들이 튀어 나와 종수의 발을 잡아 끌고 간다. 지옥으로 끌려가게 되는 찰나 승덕은 서명만 하면 손도 사라진다며 끝까지 계약을 강요한다. 순간 또 다른 손들이 승덕의 정장 옷깃을 잡고 끌어당긴다.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면, 승덕과 육체기증 계약을 맞은 다른 자살자들이 웬일인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여관방에 원한이 깃든 얼굴로 갇혀 있다. 승덕도 사라져 종수는 매달릴 곳도 없이 살고 싶다고 절규하며 지옥으로 끌려가고 만다. 완전히 수납장 안으로 끌려가기 직전, 갑자기 종수 머리 위로 빛이 내린다. 그리고 얼굴이 역광 실루엣으로 나타나 신인지 천사인지 알 수 없는, 그러나 왠지 익숙한 사람의 형체가 양 팔을 벌리며 마치 종교화 속 예수와 같은 분위기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순간 종수는 다시 정신을 잃는다. 수 시간 뒤... 종수는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종수가 눈을 떠보니, 방금 전 수호령()의 주인공인, 오프닝에서 전구를 갈던 늙은 여관 주인이 서있다. 그리고 그 뒤엔 처음 보는 불량한 청년이 서 있는데, 그가 시끄럽다며 또 하루 숙박비 모자르게 주었다며 불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늙은 여관 주인은 없다. 알고 보니 불량한 청년이 여관 주인이었고, 노인도 역시 여관을 떠도는 영혼이었던 것이다. 놀람과 함께 주변을 살펴 자신이 자살하려다 약과 술로 난장판이 된 여관방을 보고 자신이 다시 살았음으 확인한 종수는 계속 불량하게 떠들어 대는 청년 여관 주인을 밀치고 여관방에서 도망친다.

 

이번 작품을 보면서 사실 떠오른 비슷한 영화, 비슷한 특정 공간이 있었는데,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이 생각이 났다. <샤이닝>에서도 237호라는 이름의 방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비록 자세하게 설명이 나오지 않지만, 237호 안에 들어서는 순간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 선과 악의 경계가 순식간에 무너지며 주인공은 자기 내면의 은밀한 욕망을 직면함과 동시에 소름끼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에서부터 주인공 가장이 악령에 사로잡혀 가족과 호텔을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자기 지시를 듣지 않는 아내와 자식을 살해하려 날뛰게 되고 그렇게 묵시로 이어지는 악이 활개하기 시작한다. <샤이닝>에서의 237호는 삶에서 죽음으로, 환상에서 공포로 돌변하는 일명 추락의 공간으로 상징된다. 404호도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지는 초현실적인 공간이지만, 묵시적인 237호와 다르게 죽음에서 다시 삶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소생의 공간으로 상징되어 나타난다. 이 공간에서 죽음을 택하러 온 이들은 스스로 끊은 삶에 대해 전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다시 없을 수 없는 삶을 되찾기 위해 같은 방에서 죽은 이들과 (어찌보면 똑같은 소생과 같은)천국행을 교환하며 소생을 꿈꾼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는, 역시 악몽과 절망감이 도사리는 237호와 달리, 인간미가 피어오른다. 삶과 가족을 향한 사랑과 그리임을 진하게 느끼는 유령들은 자살자로서 심판을 피해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고자 또 인간으로서 삶을 되찾으려 하며 방 안에 갇혀 기다린다. 여기에서는 기존의 공포물 속에서 억울하게든 스스로든 죽음을 선택하여 죽음과 그를 선택하게 만든 세상을 향한 원망감에 사로잡힌 모습으로 묘사된 원귀와 달리 다시 삶과 기회에 대한 절싱한 그리움을 품은 혼이라는 점에서 인간미가 더 느껴지는 유령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404호도 237호보다 안전한 방은 사실상 아니다. 반대되는 분위기긴 하지만 오히려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일단 승덕을 포함한 방 안에 갇힌 유령들은 어떻게든 삶을 되찾고 싶어 자살한 영혼들을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유혹한다. 그리고 막상 종수가 삶을 선택하고 대신 계약을 포기하려 할 때, 승덕도 본색을 드려내며 다시 삶을 찾기 위해 그에게 강제 계약을 시도하려 한다. 그리고 마침내 지옥의 손길들이 종수를 끌고 가려 하자, 그를 핑계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계약하라 더더욱 요구하고, 심지어 승덕에 의해 오히려 계약과 달리 천국에 가지 못하고 방 안에 갇힌 새로운 자살자들 역시 어두운 본색을 드러내며 그가 계약을 얻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 점에서 (영화 <샤이닝>에서 묘사된 것과 유사하게)여전히 어두운 영기가 머무르는 공간이며, 그 원귀로서의 어두운 인간의 본성과 함께 절망과 폭력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공간에 자살로서 갇힘으로서 특정한 기회가 없는 이상, 아무리 원귀로서 악령이 아닌 인간미를 간직하고 있는 영혼으로서 기다리더라도, 결국 막다른 상황에서는 본색을 드러내며 악귀의 역할을 행하게 된다. 그만큼 소생으로서 방 안에서도 추락과 절망감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험한 초공간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자기를 죽이려는 악령들린 아빠를 피해 미로 속으로 도망치다 자기가 도망치며 찍어온 눈 위의 발자국을 되짚어 나간 <샤이닝>의 꼬마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되짚어 악귀나 자살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막판 다시 삶을 선택하기로 한 종수와 미련이 없이 수호령이 되어 나타나 그를 구해준 노인 유령처럼 말이다.

 

사실 단편영화, 독립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방법은 한정된 공간 내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찍는 것이다. 저렴한 제작비로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폐쇄된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한계에서 창조적으로 엮고 또 영상도 다이나믹하게 연출해 내지 못하면 공간 속에 갇힌 인물들만큼 관객들도 답답함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폐쇄 공간 이야기 영화는, 거대규모 블록버스터에 대한 상업영화 쪽 입장만큼이나, 독립영화계에서도 크나 큰 도박이나 마찬가지다. 이 분야에서 걸작이 된 <바톤 핑크>, <쏘우>(제임스 완), 심지어 블록버스터급인 <샤이닝>이나 <특전 유보트>(볼프강 피터젠) 같은 경우는 영리한 발상과 실험적인 영상 연출로 그 답답함을 피하거나 역이용하여 관객들의 집중도를 끌어올린 기적적인 영화들이다. 그 점이 이 영화들을 연출한 감독들이 현재 거장 감독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합격점이기도 하다. <404>도 로우 앵글과 하이 앵글을 넘나드는 독특한 영상 연출과 이승과 저승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발상, 심지어 천국 지옥행 과정과 육체기증 서비스 설명을 애니메이션 시퀀스를 통해 환기와 같은 분위기 전환까지 시도하며 똑같이 그 불가항력을 영리하게 이겨낸 사례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감독의 상상력과 센스가 눈여겨 보여졌던 작품이었다. 이번 작품을 필두로 앞으로도 계속 이런 폐쇄 공간을 실험하는 영화들이 계속 시도 되어 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여담 주인공 종수를 연기한 손철민 배우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저승이 실제로 있다면 역시 실제로 있겠다 느끼도록 저승 세일즈맨(혹은 현대적 저승사자)의 분위기와 그 제스쳐를 완벽힌 선보인 이인호 배우의 연기가 놀랍다. <샤이닝> 잭 니콜슨의 어두움과 <브루스 올마이티> 모건 프리먼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동시에 사로잡은 그의 행보가 앞으로 기대된다.)

3 Comments
41 이근영자막번역 02.28 22:12  
237호가 궁금하네요.
잘 있으십니까? 좋은 시간 보내세요. 새해가 된지 얼마 안되었는데 벌써 기식감이 ㅎ
나날이 새로운 맘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진정한 새해가 되길 바래봅니다. ^-^
[@이근영자막번역] 아; 사실 237호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80년도 영화 <샤이닝>에 등장하는 방이예요
쉽게 찾아보실 수 있으실 거예요ㅎ
41 이근영자막번역 03.03 04:54  
[@비커밍레이미프로덕션] 댓글과 쪽지가 일치하는 그대는 표리가 동일한 멋쨍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