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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겟 미 낫> 리뷰 - 조울증 사랑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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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신의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마 2년 전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범인이 그 행각과 동기에 있어 정신분열, 즉 조헌병 환자냐 아니냐 격렬한 논쟁에서부터 최근 대낮 길거리에서 행인을 일명 묻지마 범죄식으로 살해한 진짜 조헌증 환자 사건으로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던 데에 이어 몇 년 전부터 들려온 연예인들의 공황장애, 우울증 소식까지를 자주 접하게 돼서 부터라고 생각된다. 사실 그런 현실만큼 정신이상을 소재로 한 영화들 역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중인격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소재로 한 알프레드 히치콕의 명작 <싸이코>에서부터 똑같이 조헌병을 가지고 있으나 이를 극복하여 존경받는 수학자가 된 존 내쉬의 전기영화 <뷰티풀 마인드>(론 하워드)까지, 그 전후로 나온 <스파이더>(데이빗 크로넨버그), <피셔킹>(테리 길리엄), 그리고 <미저리>(롭 라이너)에 이르기까지 양으로든 음으로든 정신병과 정신분석은 오랫동안 영화에서 사랑받는 소재들이었다. 그러나 (그나마 정신불열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사실적으로 재현하여 극찬을 받은 <스파이더>를 제외하고)결국 이런류의 영화들도 딜레마와 비판에 부딫히게 되었다. 너무 극적으로 풀어가다보니, 정신병에 대해 혹은 그 환자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으로나 혹은 마치 영웅이 극복해야 할 난관으로서 비현실적으로 이상화시켰다는 점에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단편 <포겟 미 낫>은 보다 사실적인 접근으로 이 류의 영화들과 그와 동시에 현실속 정신장애 사람들을 접하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작품이다.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작은 마을. 학교가 끝나고 모든 아이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하교하는 저녁 시간. 두 어린 자매가 귀가하기 위해 엄마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 시간에 엄마는 오지 않고 오랫동안 학교 앞에 기다리고만 만다. 마침내 뒤늦은 시간에 엄마 카렌이 차를 운전해 자매를 데리러 오지만, 집에 가는 길 엄마는 마음속에 불만이 넘침을 넘어 정서가 불안정한 듯, 직장 동료들이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본다고 확실치 않은 이야기를 흥분하며 이야기하기 시작하다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정까지에 대해 알 수 없이 말하다 그를 생각하기 갑자기 기분이 풀어진 듯 난데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식으로 중얼거린다. 뒷좌석에서 자매 중 동생 주이는 걱정되는 눈빛으로 언니 사파이어는 불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그런 엄마 카렌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집에 돌아온 세 모녀는 조용히 말없는 저녁식사 자리를 가진다. 화목해 보여야 할 시간에 맛있게 차려진 식탁 찬에도 불구하고 세 모녀 가족의 관계는 역시 불안해 보이기만 한다. 그러다 마침내 사파이어가 좀 정상적이면 안돼?”냐며 엄마에게 따진다. 자기 딸까지 자신에 대한 불만을 토하자, 카렌은 신경질적으로 딸의 저녁상을 치워버린다. 한창 신경 안쓰이는 척하며 조용히 식사하던 동생 주이의 표정도 다시 울상이 된다. 불안하던 엄마의 분노가 터져 나와 분위기가 안 좋던 그 찰나, 카렌은 골판지로 만든 왕관을 쓰고 장난감 검을 찬채 장난스런 행진 걸음으로 등장한다. 걱정어리던 딸들의 표정에서 곧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자신 때문에 속상해하고 걱정해하는 아이들, 특히 큰 딸 사파이어를 위해 카렌은 그녀를 여왕으로 제위시키며 전화까지 건게 뭐든 주문만 해달라는 아이들 연극을 직접 해주어 보이며 딸들을 즐겁게 해주어 본다.

 

긴장과 행복감이 지난 그날 밤, 카렌은 자기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어 차에서와 똑같이 자기가 정서적으로 불안한 성격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문둥병 환자처럼 취급받아 일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역시 신경질적으로 흥분하며 말한다. 본인은 곧 새로 안정된 직장을 찾을 거라 당당히 떠들어 보지만, 소파에서 잠든 척하며 그를 몰래 듣는 사파이어 마음은 항상 그렇듯 불안하기만 하다. 한창 신경질을 풀고 전화를 끊은 카렌은 그새 자는 아이들을 돌아본다. 사파이어는 그새 다시 잠든 척을 해보고, 바로 옆에서 들었을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다시 미안한 눈빛을 보이며 사파이어부터 안아 침대로 옮겨준다. 그날 밤, 역시 보다 예민한 성격의 카렌은 안절부절 못하여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잠자리에서 일어나 어두운 거실 한 가운데 깔린 자신이 그동안 그려놓은 그림들을 살펴본다. 자신이 그렸지만 본인 느낌에서 별로라 느껴졌는지 한 그림부터 찢어보더니, 결국 신경질적으로 그림들을 모두 찢기 시작하다 바닥까지 맨손으로 내리쳐 본다. 자신의 떨어진 그림 실력 혹은 자신의 현실에 참을 수가 없어 분노가 치밀어 오르던 카렌은 혼자 외로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며 휴식을 취한다. 잠에서 깬 사파이어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거실로 나와 엄마를 향해 다가가 본다. 카렌은 자기 때문에 딸이 잠에서 깼다고 생각해 다시 다정히 방으로 사파이어를 데려다준다. 그 때 사파이어가 같이 자도 되냐고 카렌에게 물어본다. 당연히 카렌은 기꺼이 함께 침대에 누워본다. 곧 이번에는 주이가 무서운 꿈을 꾸었는지 역시 같이 자자며 다가온다. 주이를 달랜 카렌은 사파이어와 주이와 함께 양팔로 껴 앉으며, 모두 잘 자라는 동화 같은 주문을 걸며 잠을 청한다. 다음날, 주이와 사파이어 자매는 카렌과 함께 서로의 머리를 따며 다시 학교 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새로운 하루를 즐겁게 맞으려는 자매와 달리 카렌의 표정은 넋이 나가 있으며 계속 무의식적으로 딸들의 머리만 따주고 있다. 그가 한 두번이 아닌듯 그를 눈 치챈 자매를 엄마의 주목을 이끌어보기 위해 준비 다 되었냐며 다시 부르고, 그에 카렌도 다시 현실에 집중하게 되고 다시 딸들의 등교길을 준비해 준다. 엄마가 불안한 사파이어는 직장을 하루 쉰다는 엄마의 거짓말에 맞춰 자기들도 학교를 쉬겠다 얘기한다. 그러나 카렌은 학교는 꼭 가야 한다며 둘의 외출을 맞아준다.

 

등교하던 사파이어와 주이는 길 한가운데 죽어 누워있는 새 한마리를 발견하고 서로보고 용감하게 먼저 만져보라 장난을 친다. 역시 언니인 사피이어가 주이에게 먼저 만져보라 시킨다. 주이는 지지 않고 당당히 먼저 새를 만져보고, 이제 언니 차례라 말해보지만 사파이어는 절대 안 만진다 고집부려 본다. 그에 주이는 벌칙이라며 죽은 새를 만진 손가락으로 사파이어 얼굴을 만지길 시도하고, 당연 사파이어는 도망쳐 본다. 그렇게 두 자매가 또래 아이들처럼 장난을 치는 사이, 집에 혼자 남은 카렌은 다시 거실 한가운데 그림들과 받침 종이들 위에 다시 넋이 나간 눈빛으로 누워 있다. 양 팔과 소매에 피처럼 검붉은 색 물감들을 피처럼 칠해 놓고. 자신의 그림 실력부터 주변 현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나오는 절망감 때문에 죽고 싶은 심정처럼 보인다. 그렇게 엉망이 된 상태에서 카렌은 부엌으로 가보더니, 식칼 하나를 꺼내들어 본다. 그 때 아이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 본다. 문도 잠겨 있어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자매는 집 뒤 베란다 창문을 들어 가본다. 엉망이 된 거실을 지나 들어간 자매는 부엌에서 칼을 쥐고 서있던 불안정한 엄마를 발견한다. 바로 칼을 치운 사파이어는 엄마를 꽉 안아주고, 곧 뒤따라온 주이도 엄마에게 괜찮다며 위로해주어 본다. 딸들에 의해 다시 정신이 돌아온 엄마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무의미하다는 마음속 불안을 마침내 말해본다. 그에 사파이어는 자기들은 생각 안 하냐며 그런 잔인한 말을 하지 말라고 일러주고, 주이도 자기들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고 얘기해준다. 그러나 카렌은 미래가 두려운 듯 언젠가 자기가 필요 없어지게 되고 반드시 떠나게 될 것이라며 허무하게 대답한다. 그에 자매는 가만있지 말고 그만하라며 엄마를 더 꽉 안아주어 본다. 그에 드디어 제대로 제정신을 찾은 엄마는 딸들에게 사과하며 다시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이게 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에 사파이어는 그럴 필요 없고 계속 곁에만 있어만 주면 된다 답해준다.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꽤 멜랑콜리하며 시원섭섭한 분위기의 영화였다. 과연 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해피엔딩에 대해 너무 비관적인 전망이긴 하지만, 정상적으로 되겠다는 카렌의 다짐과 그럴 필요 없이 항상 그래도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좋다는 자매의 바램이 완성되고 안착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힘든 순간들이 연속적으로 닥칠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하루아침이나 일 년 내로 해결 될 리도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카렌은 자매들을 학교에서 데리러 와주는데 늦을 것이고 신경질을 낼 것이며, 자매들은 그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모두의 성질이 터지는 끝에 다시 죽고 싶은 절망감에 빠질 것이다. 또 그렇게 자매는 다시 불안에 빠질 것이다. 그나마 다시 과도하게 기뻐하며 아이들 연극 놀이를 즐겨 보이며 아이들을 웃게 해주며 가능성이 있겠지만, 사파이어와 주이 자매부터 엄마 카렌 본인까지 그렇게 기분이 과도하게 오락가락하게 만드는 조울증이라는 그녀의 마음 속 악마와 영원히 부딪히게 될 것이라는 것은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은, 영화를 보는 그 어느 관객들도 부정하지 못할 현실일 것이다. 또 영화도 이에 대해 옹호는 물론 다른 가능성을 변명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자연스런 영상으로 다큐멘터리처럼 조용히 관찰하는 듯한 분위기에 머물고 있다. 과연 이 세 모녀에게 식탁장면에서처럼, 또 이전 장면들과 달리 낮은 채도의 옷들 대신 기쁨을 다시 찾음을 상징하듯이 원색의 옷들로 입고 함께 다시 노는 동화나라 같은 해피엔딩, 마지막에 보이는 카렌이 그린 세 모녀의 화목한 가족 초상화 같은 결말이 올 것인가?

 

어쩌면 그에 대한 해석과 베란다 창문 너머 즐거운 세 모녀의 이후 이야기는 보는 관객들이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낙관적으로 볼 것인지 비관적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각자 나름대로 그들의 삶과 행복이 결정짓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는 단순히 영화에만 그치지 않고 현실의 실제 조울증, 양극성 장애 사람들에 대한 시선으로 뻗어 나갈 것이다.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그들의 행복이 달려 있다는 것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세지일 것이다. 그만큼 영화는 엄마 카렌의 증상, 조울증에 대한 정신분석으로 과장하거나 위악적으로 그리지 않고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 심지어 위험한 성향의 경우라도 괜찮을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을 찾고자 중도적으로 판단하길 지향하는 입장에서, 다름을 인정하자는 이 영화의 메세지에 나도 동의할 수 있었다. 아니, 그를 넘어 정말 이가 실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솔직히 나 역시 비슷한 문제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중도적으로 판단하려 하는 태도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보수적이거나 공격적이라며 오해만 받다 따돌림까지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똑같이 자살충동에 빠질 정도로 우울한 시기를 겪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 속 카렌의 고통과 이중적인 면모가 충분히 이해가 갔었다. 카렌처럼 태생적인 문제이든 나처럼 사회적 상황에 의한 문제이든 상관없이, 결국 함께 있어주는 가족과 친구 모든 이들이 함께 최소한의 관심으로라도, 한 팀처럼 한 가족처럼 함께 해주는 것이 진정한 조울증, 우울증 치료법일지도 모른다. 또 마침 엔딩에서 사피어가 말한 것처럼, 정상적이게 될 필요 없이 그대로 있어주는 것이 좋다고 하였던 만큼 그대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생각 역시 필요할 것이다. 역시 개인적으로 <소년병>의 임보연 감독 인터뷰를 하던 당시 영화 속의 대사 로봇 고치지 않을 거야. 이대로가 좋아.”라고 하는 대사에 장애인 관객들이 감명 받았다는 경험을 들은 입장에서 이에 역시 공감하는 바이다. 여기에 (앞서 말했듯) 나도 그런 사람이기에.

 

실제로 조울증,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색채를 강하게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거나 의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도 컬러풀한 영상으로 촬영되었다. 특히 파스텔 톤의 주홍색과 에메랄드 색의 완벽한 색채대비가 카렌과 자매가 꿈꾸는 동화같은 세계를 표현하는 동시에, 그 두 색채로서만 이루어지는 그 단색조를 통해 탈출할 수 없는 갑갑한 심정도 동시에 잘 표현되어 있었다. 햇빛이 쨍한 캘리포니아의 햇빛부터 실내조명까지 자연광으로 촬영해 내 영화 배경인 70년대의 빈티지함을 살려낸 촬영 감각은 물론 동화적이고 부드러운 음악 역시 어우러져 좋았다. 그러면서 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조울증 가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듯 잔잔한 전개와 이야기 역시 훌륭하다 생각한다. 그렇게 영화는 정서불안 주인공을 공격적인 살인마나 극적인 영웅이 아닌 마침내 사랑스런 인간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가장 중요했음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특히 실제 같은 조울증 증상이 느껴질 정도로 표정과 말투에서 공포스런 불안과 흥분을 보이는 동시에 사랑스런 엄마의 모습까지 연기해낸 엄마 카렌 역의 에밀리 스웰로는 매우 훌륭했다. 실제 자매 같은 동시에 엄마보다 더 어른스러운 서로 다른 성격의 자매역의 아역배우 브룩 폰타나와 애슐리 실버만도 역시 좋았다. 물론 이 모든 좋은 요소들을 선정하고 잘 컨트롤한 플로린, 킴 누에스크 자매 감독의 공일 것이다. 스웰로의 연기만큼이나 그들도 실제 조울증에 대해 조사하고 그에게 일러주었을 것이 틀림없겠지만, 엔딩 크레딧의 처음으로 등장한 자막 엄마에게 바친다(For Mami)”라는 문구를 보면 영화가 그들의 개인적 경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영화가 다시 무겁게 느껴진다.(영화가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내가 생각되는 대로 감독들의 실제 경험이 슬프게 결말을 맞았든 헤피엔딩을 상관없이, 다시 이 감독들이 관심이 필요한 다른 이들에 대한 차기작에서의 통찰을 기대해봄과 함께 나도 그들의 어머니께 이 글을 바치는 바이다.

 

(여담-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 감독들의 경험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에게 바친다는 자막만 보고 감독들의 실화에서부터 영화 결말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고 이렇게 글을 쓴 것을 보면, 나 자신이야 말로 비관적이 사람이고 그만큼 내 자신과 주변에까지 비관적으로 보는 모양인 것 같다. 결국은 내가 문제인 것이라는 생각에 한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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