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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투더 월드(2018) 리뷰 - ‘무엇’이 아닌 ‘어떻게’의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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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을 거치고 새로운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면서, 언론계에서 또 그와 연결되는 동시에 SNS를 포괄하는 여론계에서 자신의 활동에 대한 성찰, 혹은 훈계가 빗발치고 있다. 국민들의 집단적 행동을 막고자 거짓 기사를 대대적으로 지지하는 권력층의 횡포와 그로 오히려 알려지지 못한 여성, 소수자, 인터넷 댓글 폭력 사례들이 정권이 바뀜에 따라 터져 나오고 있으며 동시에 가짜 뉴스, 악성 댓글 여론에 대한 엄격한 제제가 대두되고 있다. 사실 그만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언론의 자유와 선정성, 진성성과 상업화는 자주 언론이 지녀야 할 도덕의 이름으로 시험대에 항상 오르곤 했다. 그래서 심지어 사실을 이야기하고 사회문제를 직접적으로 서라하는 언론이더라도 그의 태도와 표현법에 있어서 역시 틀렸다는 반박이 제기되기도 하며 혼란을 빚었다. 다행인 점은 그런 많은 철학자들과 작가들이 참언론인 자세나 객관적인 동시에 주체적인 기사로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연구들이 이뤄지고 교육되어 졌다는 점이다.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 닐 포스트먼(Neil Postman), 존 필거(John Pilger)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이 중에서 존 필거는 언론의 도덕성에 대해 중요한 이슈들을 던져왔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건 프로파간다를 감시하고, 파괴하고, 반박하는 저널리즘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저널리즘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What we need is a journalism that monitors, deconstructs, and counters propaganda. What we need is what I would call real journalism)”라고 직접적으로 설파하며, 아무리 끔찍하고 솔직한 진실이더라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진중한 언론인지 아님 프로파간다로서 선정성인지를 고민해보여 왔다. 네덜란드에서 날아온 단편 <윈도우 투 더 월드>는 그런 언론의 딜레마를 그린 단편이다. 

 

강렬한 오프닝. 총격과 폭발음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시가전 한 가운데 건물 안에서 탈출하기 위해 질주하는 한 여인의 시점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마치 <본 얼티메이텀>이나 <블랙 호크 다운>, 최근의 <PMC : 더 벙커>를 연상시키는, 다큐멘터리처럼 현장감 넘치는 1인칭 시점으,로서 거칠게 흔들리는 영상이 펼쳐지고, 그 위로 갑자기 잠결에 설치는 여인 얼굴 클로즈업도 이중으로 겹쳐 나타난다. 계속해서 불안한 총격음과 질주의 악몽 속에서 그렇게 종군 사진기자 주인공 에바가 악몽에서 깨어난다. 악몽에서 깨어났지만 그 꿈이, 그로써 과거가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다음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에바. 그러나 여전히 충격인 큰 듯 넋이 나간 얼굴로 한동안 침대에 앉아만 있고, 어떻게든 악몽에서 털고 일어나고자 에바는 창 밖 날씨를 보고 커피 한잔을 마셔 보지만 그녀의 표정은 일관적으로 우울해 보인다. 심지어 집마저도 온통 흰 색 뿐이어서 그런지, 감옥이나 연옥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곧이어 에바는 그녀의 일, 촬영한 사진을 골라내기 위해 필름 프린트를 살펴본다. 돋보기로 하나하나 프레임 별 살펴보면서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사진은 붉은 매직펜으로 가위표 한다. 그 과정에서도 에바의 표정은 계속해서 착잡하고 복잡해만 보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 그녀의 일터인 신문사 편집장실. 신문사 편집장이자 연인이기도 한 오토는 이번 종군기사에 쓸 사진은 아직 멀었냐고 묻는다. 에바는 사진들은 잘 인화되었으니 기다려달라 답하지만, 오토는 그녀의 심경이 불편하다는 걸 눈치 채고 잠은 잘 자냐는 질문을 던진다. 걱정해주는 질문임에도 에바는 또다시 심리 치료사처럼 말하지 말라며 기분 나빠하고, 오토는 어떻게든 기운을 북돋아주고자 이번 기사를 만들어내면 큰 건을 하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에바에게는 기사를 만들어 내명예와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다는 짜증나고 경박한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결국 그렇게 예민해하던 찰나 에바는 커피는 흔들리는 손에 실수로 오토에게 받은 커피를 자신의 스카프에 쏟고, 이게 오토 탓이라고 괜히 호통한다. 시간이 지나 아베의 차에 함께 타고 있는 에바와 오토. 에바는 자신이 이런 종군 사진기자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걱정을 털어 놓지만, 사람들은 이를 듣고 싶어 하고 그가 세상을 향한 창(Window to the World)”으로서 언론인의 의무라는 매정한 말만 던진다. 역시 그 말에 에바는 어떻게 사람들이 이런 고통스런 전쟁 이야기를 원하냐며 그럼에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고 결국 두려움을 사는 파는 일이라며 따지는데, 그러나 오토는 그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에바의 전쟁사진들만 살펴보다가 한 사진에서 아름답다며 멈춰선다. 그 사진 이야기에 에바는 불편한지 표정부터 경직이 되더니 그 사진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그럼에도 오토는 좋은 사진이라고 이를 기사 커버사진으로 하겠더니 결국 올해의 기자 수상감이라는 말까지 한다. 결국 에바는 폭발해 차를 세우고 내리라고 분노한다. 결국 오토는 에바의 차에서 들판 한 가운데로 쫓겨나고 에바는 오토가 갖고 내린 문제의 사진을 신경질적으로 뺏고 난 뒤 다시 마저 길을 달린다.

 

자신이 심경을 계속 건드리는 오토를 쫓아내고나서 화를 삭히며 진정하고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그녀 옆에 다시 오토가 앉아있다! 순간 나타나는 오프닝 전투 장면 플래시백. 다급히 전쟁판을 피하려 건물 안에서 밖으로 탈출하려 뛰어가던 아베. 그리고 그의 곁에서 오토도 함께 뛰고 있다. 함께 전쟁을 취재하다가 전투를 맞은 상황에서 둘은 함께 빠져나가려고 건물 밖으로 달리는데, 결국 먼저 앞장 선 오토 옆에서 폭격이 닥친다. 그 뒤로 에바가 달려오고 치명상을 입은 오토를 발견하고 계속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말을 걸어 보지만, 눈앞에 무언가에 시선이 집중된다. 같은 건물 안에 숨어 자신들과 같이 전쟁의 공포에 떨며 먼지를 뒤집어 쓴 슬픈 표정의 여자아이.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털실 담요를 끌어 앉고 있고, 이마에는 상처로 인해 핏줄기가 흐르고 있다. 주변에서 총탄이 튀는데도 울지도 절규하지 않고 무덤덤이 공포에 질린 아이에 표정에 넋이 나간 에바는 그 자리에서 바로 카메라를 들어 소녀의 얼굴 사진들을 찍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 도움 받지 못하는 오토는 죽어간다. 그렇게 전쟁의 참상을 담아낸 오토가 격찬했던 문제의 사진 옆에서 모든 전말을 회상해낸 에바는 결국 피하고 싶었던 다시 마주하고 싶은 앉은 자신의 현실에 통곡한다. 그녀의 뒤에서는 이미 죽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자신의 죄책감으로서 오토가 우리는 세상의 창문이다(We’re the Window to the World)”를 계속 중얼거린다.

 

에바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면서도 아름다운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그녀는 죽은 애인의 악몽에서 영원히 못 벗어날 것이다. 그렇게 소녀를 살리고 대신 오토의 목숨을 내놓았다. 이는 지금 현재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 특히 언론인들의 현실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권력이나 위험으로부터 감춰진 진실을 알리고자 목숨부터 재산을 거는 상황도 있지만, 단순히 그 문제를 넘어서 세상의 진실을 알리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려야 하는가 가리지 말 것인가의 문제가 항상 딜레마로 자리잡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나도 항상 신문이나 뉴스 볼 때, 혹은 지식인계에서나 시민운동권에서 어떤 정보를 알리고 세상을 바꾼다고, 에바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까지 위험을 무릅쓰거나 보는 이의 심리적 불편함을 무시하고 격하게 표현할 만큼 가치가 굳이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자주 있다. 물론 현실을 직시하고 주변 문제를 모른 척 하지 말고 제기해야 하는 것이 손석희, 이석봉 등 대표 언론인들도 강조하는 언론인의 자세’1)임은 당연하겠으나, 이는 기본적인 요소에 불과하고 사실상 진실을 알리는 일이나 그 대상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 이상 이미 각오된 일이고 또 그렇게 발견하는 진실도 객관적으로 보면 뻔한 팩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는 건 그를 어떻게 담고 대중에게 알리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아무리 권력에 의해 감춰지고 은폐된 약자층을 위한 정의의 진실이더라도, 그를 어떻게 묘사하고 알리고 대중을 깨우치게 하는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만일 공격적으로 선전식으로 표현하고 어느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강요하는 식의 언론이라면, 아무리 진실을 알리더라도 아래로부터의 언론이더라도 마찬가지로 파시즘화 되는 것이다. 특히 영화 속 주인공 에바나 오토처럼 전쟁의 끔찍한 참상을 알린다고 전쟁의 상처가 있는 에바를 신경쓰지 않는다거나, 소중한 이의 목숨과 맞바꾸게 되는 정도라면 상당히 문제시될 만하다. 만약에나 이를 불가피한 숭고한 희생이라고 포장한다면 더 문제는 심각할 것이다.

 

과연 에바와 오토는 언론인으로서 무얼 실수한 걸까? 어떻게 행동하였더라면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까? 단순히 자신과 연인의 위험을 무릎쓰고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태도 자체가 문제였을까? 그렇게 쉽게 결론짓는다면 이 언론의 문제가 현실에서 마저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명 철학자 장 보드리야드(Jean Baudrillard)도 그의 저서 [소비의 사회]에서 현대적 사물의 '진짜 모습'은 무엇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도구로서가 아니라 기호로서 조작되는 것이다.”라며 언론계의 선동주의적, 소비주의적 이면을 지적하였고, 언론학계 대표학자인 마샬 맥루한도 가장 훌륭한 미디어에 대한 은유로서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탐구한다.”라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 대한 지지를 보였다. 그 관점에서 본다면 앞에서 존 필거가 진정한 저널리즘이라 하는 부를 있는 언론이란, 단순히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생각들을 자유롭게 나누고 그 자유로써 대중이 민중이 하나로 뭉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언론일 것이다. 그럼에도 공교롭게도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어느 언론계와 미디어에서는 이에 대한 고민이나 명심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처음에 나도 이토록 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을 가졌는데, 이제는 이 증후군의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만큼 프로파간다적인 만큼 이런 언론의 행태는 언론이라기보단 마케팅’, 즉 돈의 문제인 것이다.

 

기존 체제를 유지하든, 새로 엎고 새로운 기준과 권위를 세우고자 하든 자신들의 권력과 물질적 이익이 걸려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양심적인 언론인이라도 그를 핑계삼아 위협적이게 될 것이 틀림없다. 실제로 현재 쟝 보드리야르,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그리고 슬라보예 지젝까지 언론학계와 철학계의 대표주자들이 진보여론에 대해 같은 생각으로 비판해왔었다. 지금도 21세기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등에서 잔혹한 전쟁과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끝난 전쟁들도 위안부 및 징용 문제 등 끝나지 않거나 잊을 수 없는 상처들을 계속 남기고 있다. 이런 이 순간에 지금도 수많은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이 목숨을 걸다시피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오토처럼 목숨이나 양심마저 버려야 하는 것인 아닌지 결과를 위해서라면 수단을 정말 가리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되짚지 않으면 영화 속 비극은 그 스크린을 넘어 현실의 비극은 지속될 것이다. 이는 전쟁터는 아니어도 현실에서도 정권 권력의 비리나 은폐된 역사, 모두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적 문제들을 찾아 헤매려는 기자들에게도, 오히려 갑론을박을 더 악화시키며 대중적 혼란을 주느냐 사회적 문제에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게 오히려 더 상처가 되는 선정성 문제로 역시 적용될 것이다. 특히나 언론 역시 역사의 기록이라는 면까지 본다면, 그로서 역사의 비극은 항상 그래왔듯 되풀이 될 것이다.

 

이런 언론인의 딜레마를 주인공의 죄의식과 맞춰서 감옥과 같이 격자 진 창문 프레임과 필름 프린트, 세로 격자 진 블라인드 커튼까지의 상징적 이미지들을 활용하며 연옥과 같은 백색 미쟝센의 영상으로 전개하여 인상적인 단편이었다. 물론 앞서 표현한 반복되는 감옥같은 이미지 영상들, 커피가 피처럼 얼룩진 에바의 스카프, 영화제목이자 주제로서 역시 반복해 등장하는 창문들, 심지어 나는 사람들을 찍는 걸(쏘는 걸) 직업으로 산다.(I shoot people for living)”라는 문가가 써진 머그컵 등 노골적으로 주제를 보이는 연출면에서는 꽤 아쉬움이 크다. 반전 역시 너무 주제에 맞춰 의도적이고 새로운 것도 아니며 드라마 역시 그만큼 단순하다. 그래도 현대의 새로운 고충인 언론의 자세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조목할 만한 단편이었다. 이슈의 전달 혹은 명예를 위해, 즉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킬 수 있는 언론의 위험한 이면을 도전적으로 전달하면서도, 그 문제를 자칫하면 훈계적인 진부한 사회고발물 머무를 수 있음에도 대사와 볼거리를 절제하며 신비로운 연출로 자연스레 생각을 유도한다는 점 역시 훌륭하다. 여기에 주인공 에바를 연기한 마요크 플리에르(Marjoke Plijnaer)의 절절하면서도 신경질적인 멜로 드라마적 연기 역시 설득력을 주는데 한 몫 하기도 했다. 내 개인적으로 그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준 그녀가 헐리우드에서도 러브콜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이 준수한 작품을 연출한 감독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민감한 주제를 용기 있게 던지면서 신비롭게 전개해보인 작품을 탄생시킨 새로운 양심적인 감독으로서 그에게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윈도우 투더 월드> 보러가기 : http://www.cinehubkorea.com/bbs/board.php?bo_table=bbs01&wr_id=1996



1) 언론인이라면 갖춰야 할 10가지 자세대억넷 이석봉 대표님, 블로그 이야기캐는광부 스토리텔링 연구소”, 2010.08.24. / 손석희 언론인으로서 자세, 문제를 제기해야 문제 해결”, MoneyS 뉴스, 201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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