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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실소득의 증가가 매력을 잃게 되면 무엇을 해야 될까요?

오늘 사실 영상을 얻으려고 갔다가

어느 여류 경제학자의 강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꼭 공유해야한다는 의무감에서 .... 


아래에 그 자막을 올립니다. 영상은 캡쳐한 것 있지만 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일단 유투브공유영상은 인증샷으로 올립니다. 하지만 자막을 보시면서 보시는게 화질이 너무 안좋아서 ㅎ 자막은 바로 아래에 영상은 최하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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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기어다니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본 적이 있나요?


모든 부모가 알듯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첫째, 바닥에서 꿈틀거리죠,


주로 뒤쪽으로요.


하지만 그러다가 앞으로 기어가게 되고,


그 다음엔 자신을 일으켜 세우게 되고,


우린 모두 박수를 쳐 주죠.


앞으로 가기와 위로 일어서기의

단순한 동작은


인간이 인식하는

가장 기본적인 발전의 방향입니다.


인류의 진화에서도 이 이야기를 하는데요,


구부정하게 걷던 조상들에서

마침내 똑바로 서게 된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항상 인간으로 분류되고 중간 보폭을 걷는


호모 사피엔스까지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굳게 믿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이 이와 매우 비슷한 모양을,


끝없이 일어서는 성장을 할 것을요.


이제는 성장의 모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다시 그려볼 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우리를 번창하게 해주진 않지만

성장해야되는 경제를 가지고 있으나


우리에게, 특히 가장 부유한 국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가 성장하지 않더라도


우리를 번창하게 만들어주는 경제입니다.


맞아요, 조금은 경솔한 말이고


사고방식의 엄청난 변화를 내포하고 있지만


이 변화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만약 이 시대의 인류가

함께 번영하고 싶다면요.


그럼 이 성장에 대한 집착은 어디서 왔을까요?


GDP, 또는 국내 총생산은,


그저 경제에서 일년동안 판매된


물건과 서비스의 값의 합일 뿐입니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이 단어는


매우 빠르게 정책 입안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고


그 정도가 지나친 나머지

지금도 가장 부유한 국가들에서는


정부가 경제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더 많은 성장에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로스토우가 1960년에 쓴 책에

가장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책을 너무 좋아하고

초판본을 소유하고 있어요.


"경제 성장의 단계:

비공산당 선언"


(웃음)


강한 정치적인 향기가 느껴지죠?


로스토우는 우리에게


경제는 다섯 단계의 성장을

거쳐야한다고 설명합니다:


먼저, 전통적인 사회는 국가의 생산량이


그들의 기술, 기관, 사고방식으로 제한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전제조건들이 마련되면


이제 은행사회가 출현하고


일은 기계화되고


그 너머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성장은 필수라는 믿음이 자리잡습니다.


국가의 위엄성이나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삶 같은 것을요


그 다음 도약은,

복리제도가 경제 체제에 자리잡고


성장이 정상적인 현상이 됩니다.


네번째 단계는 경제가 성숙하게 되어


천연자원 보유와 관계없이

원하는 산업을 모두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다섯번째이자 마지막 단계는

고도대중소비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소비물품을

다 구매할 수 있게 되죠


이를테면 자전거나 재봉틀 같은 것을요.


기억하시겠지만 이게 1960년대였습니다


여기에 내포된 비행기의 비유를 들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비행기는 다른 것들과 다릅니다


다시는 착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로스토우는 우리가 대량 소비의

해질녘으로 날아가도록 두었는데요


그는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죠,


"그 다음 질문은,


역사는 그저 일부만을 알려줍니다


언젠가 실소득의 증가가 매력을 잃게 되면

무엇을 해야 될까요?"


그는 이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한 적은 없었죠.

그 이유를 알려드릴게요


때는 1960년,


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후보의 고문이었고,


케네디는 5% 성장을 공약으로 내걸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스토우가 할 일은

비행기를 계속 날게 하는 것이지


언제, 또는 어떻게 착륙할 수 있을 지

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지금 대량 소비의

해질녘으로 날아가는 중입니다.


반 세기가 넘도록


무한한 성장을 기대하고, 

요구하고, 의존하는


경제와 함께.


왜냐하면 우리는 재정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성장에 재정적으로 중독되어 있는데, 

오늘날의 재정 시스템이


가장 높은 화폐 반환률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공공적으로 무역하는 회사들을

꾸준한 압박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판매증대와 마켓분배의 성장

그리고 이익의 증가를 가져오도록요


그리고 은행이 재화를

만들어내어 부채부담이율이


더욱 많은 상환의 보전을 갖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성장에 중독되어 있는데


정치인들이 세금을 늘리지 않으면서


세수입을 늘리고 싶어하는데


GDP의 증가는 이를 확실하게 이뤄줄

방법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정치인도 G-20 사진속의

자리를 잃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웃음)


그러나 모두가 성장하는 때에

경제가 성장을 멈추게 된다면


그 정치인들은 다른 떠오르는

정권에 의해 교체되겠죠.


그리고 우린 사회적으로 성장에 중독됐는데


그 이유는 한 세기동안의

소비에 대한 허위 선전 때문이죠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매혹적으로

창조하고,


물건을 구매할 때마다 매번,


우리가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면..


..자기 삼촌의 심리치료가..


..매우 수지맞는 소매상적인 처치행위가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알아차린..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손자에

의해 주창된 허위선전 때문이죠


이 어떠한 중독도 모두 해결될 수는 없지만,


지금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을 가치가 있어요


이 여정이 어디로 향해가는지를 본다면요.


세계 GDP는 1950년도보다 열 배 높고


이 증가는 몇십억 명에게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세계 경제는

믿기 힘들 정도로 분열되었고


이젠 부의 대부분이


세계의 1 퍼센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는 더욱 

믿을 수 없을 정도록 퇴화되고,


빠른 속도로 이 세밀하게 안정화된 행성에..


의존하는 우리모두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치인은 압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성장의 목적지를 선보입니다.


여러분은 그린 경제,

내적인 실을 다지는 경제,


스마트하고 탄력적이고

균형잡힌 성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미래를

성장을 고른는 한은 골라보세요


제 생각에는 더 높은 차원의 야망을 가져야 합니다

한참 더 커다란 야망을,


왜냐하면 21세기 인간성에의 

도전은 확연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획기적이고 고유하고 

살아 생동하는 행성내에서


모든 사람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자연의 나머지가

번창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에서 진보는 

돈의 미시적인 척도로 측정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시계가 있는 계기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앉아서 차분히

어떤 모습일까를 한 번 그려봐야 합니다.


좀 이상하게 들리찌는 모르지만


그것은 도넛처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전 압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도넛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그것은 종내는 우리에게

유익한 것으로 판명될 것입니다.


이렇게 상상해봅시다

인간성의 자원은 중간에서 발광하는 빛을 사용하고


중간의 펑 뚫린 구멍에 의존하여


사람들이 삶의 근본적인

자원을 구한다고 말입니다.


각 사람이 삶의 존엄과 기회에 필요한


음식이 없고, 건강케어와

교육과 정치적인 발언권과 주거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사회의 기반위에서

그 구멍밖으로 나오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 도넛자체에 진입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집단적인 자원은


바깥원에 있는

생태적인 벽을 도월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우리는

너무나 큰 비중을 외계에 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호조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기후가 무너지는 것을 야기하여

대양을 산성화시켜서,


오존층에 구멍을 냅니다.


우리자신을 지난 11,000년간 인류를 위한

따뜻한 보금자리인


평생지원되는 시스템인 지구라는

행성의 범위를


넘어서서

밀어넣습니다.


그래서 지구라는 범위내에서


이 양면적인 도전은 모든 이의 필요에 부응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진보의 모습을 

가져왔고


더 이상의 항상 향상곡선적인

성장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류에게는 여전히 

아름드리 보금자리입니다.


기반과 천정의 제약사이에서

역동적인 균형을 구가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일단 이런 그림을 그리자

충격을 먹었습니다


복지의 심볼이 많은 고대문화에서


이 동일한 역동적인 균형감각을

반영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오리족 타타랑기에서부터


도가사상가와 불교신자의 

무한한 윤회,


셀티의 양면적인 나선형이 

그런 심볼입니다.


그러면 21세기의 우리는

이런 역동적인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이건 핵심적인 질문인데요,


왜냐하며 이 빨간 쐐기가 보여주듯이,

지금은 우리는 균형과는 거리가 멉니다.


의존하거나 지나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 구멍을 보세요 

그럼 수백만의 수십억의 전세계사람이


여전히 그들의 기본적인 필요가 부족하고


여전히 우리는 적어도 이 지구적인 범주의

네가지를 이미 도월하고 있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기후파괴의 영향의 

위험과


생태계몰락의 위험에 빠져듭니다.


이것이 현생인류와 지구라는 고향의 상태입니다.


우리는 21세기의 우리에게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그 지난 세기의 어떤 경제학자가 

이런 그림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왜 우리는 그

들의 이론을 상상하여


그 도전에 응전할 것이라고 합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최초의 세대로

이런 것을 목격하였고


아마도 이러한 이야기를 회자할 수 있는

실제적인 기회를 가진 마지막주자이기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듯이, 20세기의 경제학은

만약 성장이 불평등을 조장한다면


우리로 하여금 재분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확신시킵니다.


왜냐하면 더욱 많은 성장은

다시 악순환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장이 공해를 가중시킨다면,


규제하지말아라 왜냐하면 더욱 많은 성장이

모든 것을 청정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와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결과는 그와 같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경제를 창조하여 결핍에 태클을 걸고

함께 도월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계를 통하여 말입니다.


우리는 경제를 재생적이고 재분배적으로

디자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듯이 우리는 

퇴화적인 산업을 유전받았습니다.


우리는 지구적인 물질을 우리가

원하는 물건으로 전용합니다.


잠깐 쓰고 어쩔때는 한 번만 쓰고

버리는 것이죠.


그리고는 우리는 스스로를

지구적인 바운더리로 밀어넣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경향성을

되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살아생동하는 세계와 혼연일체가

되어 작동하는 경제를 창조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원이 다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재활용을 거듭하게 해야 합니다.


태양열이 의해 작동하는 경제,


한 과정에서의 폐기물이 

다음과정의 되먹이가 되는 경제.


그리고 이런 재생적인 설계는

도처에서 튀어나올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퀴토에서 오슬로에 걸치

100여개의 도시를 통하여


하라레에서 호바트를 관통하여,


이미 전력의 70퍼센트를 생산합니다.


태양으로 부터 바람으로 부터

파도록 부터말입니다.


런던, 글래스고우, 암스테르담같은 도시는

나선형도시설계의 선구가 되고 있고,


한 도시지역 프로세스의 폐기물로 부터


다음 프로세스의 음식이 되는 길을 닦으면서

말입니다.


에티오피아의 티그레이에서

오스트레일리이의 퀸즈랜드까지,


농부와 삼림업자는 한 번 바랜 경치를 

재생시키고 있고


그래서 삶과 함께 어우러지게 하고 있습니다.


설계에서 재생적으로 된 만큼


우리의 경제는 반드시 재생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유례없는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왜냐하면 20세기의 중앙집권적인 기술은,


기구는,


부와 지식과 권력을 소수의 손에 맡겼기 때문입니다.


이 21세기에 우리는 

우리의 기술과 제도기구를 설계하여


부와 지식과 많은 사람에게의 권력을

재분배할 수 있습니다.


화석연료에너지와 대규모의 생산대신에


우리는 재생적인 에너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디지털플랫폼과 3D 프린팅을 구비했습니다.


200년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기업적인 통제는 끝장나고


아래에서 위로의, 오픈소스의,

피어투피어의 지식공유가 대신합니다.


그들의 주주를 위한


그리고 여전히 최대상환을 추구하는 기업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어,


가치의 다중적인 형태를 재생산하고 그것을

네트워크를 통해 재생산하도록


설계된 사회적기업에 

자리를 내어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에서부터


사물인터넷과 물질과학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기술을 통어할 수 있다면,


만약에 우리가 이러한 재생적인

설계의 서비스를 통어할 수 있다면,


우리는 헬쓰케어, 교육,재정,

에너지, 정치적인 발언권을 확실하게


그것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달하고 그들에게 권력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듯이 재생적이고

재분배적인 설계는


21세기경제에 획기적인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로스토우의 비행을

어디서 탈출합니까?


글쎄요. 누군가에게는

로스토우의 망령이 여전히 그린성장의 무한을 가져다 주어서,


비물질화라는 현상에 덕을 입으려는 생각덕분에,


외연적으로 확장되는 GDP성장은

영원히 지속되어 자원이 고갈되는 동안에도 지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데이터를 보세요.

이건 사치스러운 비행입니다.


네 우리는 우리 경제를

비물질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단한 성장에의 의존성은

자원의 사용과 불가분관계로


우리는 안전하게 지구적인 바운더리내로 

회귀시키는 데 필요한


척도상의 자원의 사용을 필적할 순 없습니다.


저는 압니다 이러한 성장에 대한 

사고방식이 생소하다는 것을요


왜냐하면 성장은 좋은 거니깐요

안그런가요?


우리는 우리의 자손이 성장하길 

바라고 정원사는 식물이 성장하길 원합니다.


네 자연을 봐도 성장은 놀랍고

인생의 자원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면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이 오늘날의 에티오피아와 네팔은..


그 성장이라는 국면에 있을 겁니다.


그들의 경제는 1년에 7퍼센트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을 다시 보세요.


여러분의 자녀의 발에서 아마존의 삼림을 보세요


아무것도 자연적으로 영원히 성장하는 것은 없습니다.


사물은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그것은 오로지 그렇게 함으로써


오랜 기간동안 번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압니다.


만약 제가 제 친구가 의사를 찾아갔다고 말한다면,


그 의사가 그녀에게 그녀가..


매우 다른 성장을 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직관적으로 무엇인가가 영원히


건강한 생동하는 번영하는 

시스템속내에서 영원히 성장하려 한다면,


전체의 건강에는 해독이 있을 것이라는 걸 압니다.


그럼 왜 우리는 우리의 경제가


한 시스템으로 이러한 경향을

차버릴 수 있는


그래서 영원히 성장하리라고

상상하십니까?


우리는 긴급하게 재정적이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노베이션이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구조적인 성장에의 의존성을 극복하게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도너스 바운더리안에서


함께 번영하고 균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바운더리의 생각이

당신으로 하여금 반동적인 생각을 하게 한다면,


다시 생각하세요.


세계의 독창적인 사람들은


바운더리를 창조성의 근간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모짜르트의 5옥타브 피아노에서


지미 헨드릭스의 6줄의 기타와..


세레나 윌리엄즈의 테니스코트에 이르기까지


바운더리는 우리의 가능성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도너스의 바운더리는 

인류가 번창하도록 가능성을 놓아줍니다.


끝없는 창조성, 참여, 소속감과 의미와 함께 말입니다.


모든 독창성을 들여 우리는

그 곳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리고 살려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1 Comments
이근영 06.16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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